[문화광장]역사와 신화, 미술 속에서 배우는 즐거움

[문화광장]역사와 신화, 미술 속에서 배우는 즐거움
  • 입력 : 2017. 03.21(화)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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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브레다의 항복' 앞에 초등학교 1~2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앉아있다. 선생님이 설명하는 동안 벌써 여러 관람객이 이 작품을 보고 갔다. 이렇듯 긴 설명에 아이들은 지루할 법도 한데 모두 두 눈을 반짝이며 작품과 선생님을 쳐다본다. 학생들의 태도가 진지하기만 하다. 이러한 장면을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루브르 미술관에서는 중학교 학생이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고,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장에서는 고등학생들이 모여앉아 서로 토론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박물관, 미술관, 전시장 어디서나 작품 앞에서 수업을 받는 학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술관에서의 수업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교육인 경우가 많고, 주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서는 학교 수업시간에 미술관에 가기도 어렵지만 간다고 해도 학생들이 발표하고 토론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중·고등학생들이 현장학습으로 미술관을 방문하기는 하지만, 한 학년 전체가 줄을 서서 전시장을 산책하듯 둘러보고 나온다. 대부분 학생은 말 그대로 작품을 눈으로 보기만 할 뿐이다. 물론 학생들이 작품을 보고 작품 형식 즉 색, 구성, 표현기법 등에 감동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작품의 반만 이해한 것이다. 작품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품의 나머지 반을 알기 위해서는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

스페인의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의 작품 '브레다의 항복' 앞에서 선생님이 그렇게 오랜 시간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작품의 뛰어난 예술성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림 속에 스페인의 역사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필립페 4세 때 일어난 30년 전쟁 중에 1625년 스페인이 넉 달 동안 성을 고립시켜 네덜란드의 브레다를 함락한 사건을 벨라스케스는 '브레다의 항복'으로 그렸다. 이처럼 작품은 역사를 다루기도 하고, 정치, 사회문제 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초상화의 경우에도 의복 등은 당시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심지어 정물화에서도 당시 사람들의 사상을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그림은 볼뿐만 아니라 읽기도 해야 한다.

그림 속에서 역사와 신화를 접하게 될 때 책에서 읽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을 느낀다. 화가들의 상상력은 역사학자와 신화학자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화가들이 보여주는 역사와 신화는 학생들에게 생생하게 다가갈 뿐만 아니라 토론 거리를 만들어준다. 학생들은 전시장에서 작품을 보면서 역사, 신화, 풍속 등을 배우고, 서로 토론하면서 역사와 사회를 보는 눈을 키울 수 있다.

제주도의 역사와 신화도 작품으로 그려져 왔다. 또한, 작품들은 4·3 미술제와 제주신화전 등에서 전시되었다. 특히 올해 4·3 미술제는 제주도립미술관뿐만 아니라 원도심에 있는 문화공간 10여 곳에서 열린다고 하니 더 많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의 학생들이 전시장에서 작품을 보며 제주의 역사와 신화를 공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학생들이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작품을 보며 4·3 사건을 이야기하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을 나누며, 제주의 신화와 신들을 공부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이를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충분한 보람이 있을 것이다.

<김연주 문화공간 양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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