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얼마 전 음악 스트리밍을 듣다가, 과거 인기 가수들이 다시 무대에 서는 예능 프로그램 '슈가맨'의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1990~2000년대의 추억이 깃든 노래들 중 유독 '아스피린'이라는 노래가 귀를 사로잡았다. 초등학생 시절 처음 들었던 노래였는데, 가사 중에 다소 거친 표현이 등장해 어린 마음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가사에 영어 욕설이나 직설적인 표현이 자연스럽게 쓰이지만, 당시에는 방송심의가 엄격하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이 노래가 공중파에서 흘러나왔던 것이 신기했고, '아스피린'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흥얼거리던 어린 나를 떠올리며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는 의사가 되어, 아스피린이 단순한 진통제가 아닌 항혈소판제로서 심혈관질환과 뇌혈관질환 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이라는 것을 잘 알게 됐다. 그렇다면 왜 이 약의 이름이 노래 제목으로 사용됐을까.
가사를 들여다보면 사랑과 성장의 아픔을 '진통제'인 아스피린으로 치유한다는 내용이다. 당시에는 의약품 이름을 제목으로 붙인다는 발상이 새로웠고, 이 노래는 세대를 아우르며 큰 사랑을 받았다.
그렇다면 아스피린은 정말 진통제일까. 지금의 기준으로는 아니지만, 당시에는 맞는 말이었다. 아스피린은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로 진통·해열·항염증 작용을 모두 지닌 약이다. 다만 현재는 주로 항혈소판제, 즉 혈전이 생기지 않도록 돕는 혈관약으로 사용된다. 용량은 하루 한 번, 100㎎ 정도의 저용량이다.
반면 1990년대에는 500㎎의 고용량으로 복용하며 진통제로 쓰였다. 하지만 고용량 복용 시 위장관 출혈 등의 부작용 위험이 커서, 지금은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일반 진통제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만약 지금 누군가 사랑의 아픔을 약에 비유한 노래를 만든다면 제목은 '타이레놀'이나 '부루펜'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아스피린은 우리 몸의 혈관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약이지만 결코 무해한 약은 아니다. 소량이라도 위장관 출혈이나 궤양을 일으킬 수 있으며, 특히 고령자나 위장 질환 병력이 있는 사람은 주의가 필요하다. 출혈 경향이 있거나 다른 항응고제를 함께 복용 중이라면 부작용 위험이 더 커진다. 장기 복용 중이라면 정기적인 혈액검사로 빈혈 여부를 확인하고, 필요시 내시경으로 위와 십이지장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스피린은 '좋다더라'는 말로 시작할 약이 아니라는 점이다. 복용 여부는 반드시 의사의 진료와 판단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몸에 좋은 약도, 잘못 사용하면 해가 될 수 있다. 약은 언제나 내 몸의 상태에 맞게, 꼭 필요한 만큼만 복용해야 한다. 그것이 건강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신재경 365플러스내과의원장>
■기사제보▷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