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농업 안전망 만든다-수급 관리 성과와 과제] (1)제주형 수급 관리

[제주 농업 안전망 만든다-수급 관리 성과와 과제] (1)제주형 수급 관리
산지 폐기 되풀이 말고 생산자 주도로 제값 받자
  • 입력 : 2025. 10.29(수) 03: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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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제2기 제주농산물수급관리연합회 출범식이 열리고 있다. 제주도 제공



제주 농산물 수급 관리 정책을 중심으로 농가 소득·경영 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들을 살펴본다. 제주형 수급 관리, 농업 디지털 전환, 통합 마케팅 전략으로 나눠 3회에 걸쳐 싣는다.



[한라일보] 기후 변화, 농가 인구 감소, 고령화…. 제주 농업이 헤쳐가야 할 난관들이다. 농업이 처한 상황을 말해주듯 2010년 기준 19.8%에 달했던 제주 농가 인구는 갈수록 줄고 있는 추세다. 제주도에서 최근 발표한 '2025 농축산식품 현황'을 보면 2023년 10.4%로 10%대를 유지했던 제주 지역 농가 인구 비율은 2024년 9.8%로 떨어졌다.

이런 현실에서 농민들이 세찬 비와 바람, 더위를 견디며 힘들여 키운 밭작물을 트랙터로 갈아엎는 장면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농사에 들인 비용이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때마다 산지 폐기가 반복됐다.



ㅣ10년간 수백억 투입 시장 격리… "근본 처방 아냐"

기존 정책에는 한계가 있었다. 가격 등락에 따른 품목 쏠림 현상 등 구조적 문제와 더불어 근본적 해결책 없이 가격이 폭락하면 행정에선 사후 조치로 시장 격리(산지 폐기)에 나섰다. 행정 칸막이의 부작용으로 품목 간 통합적 정책 수립과 실행에도 제약이 따랐다. 실제 제주에서는 농산물 생산 과잉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10년간 수백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시장 격리 사업을 실시해 왔지만 임시방편적 대응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제주 농민들의 당근 수확 장면. 한라일보 DB

제주 주요 월동채소류는 기상 변화로 인한 생산량의 변동 폭이 크다. 수요와 공급의 조절, 시장 가격 안정화를 통한 농가 소득 보장은 제주 농업 정책의 중요한 목표일 수밖에 없다. 품목별 생산량과 출하 조절 기능을 강화하는 등 제주 농민들이 애써 기른 농산물들이 제값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는 거다.

제주도가 2022년부터 '농정 대전환'이란 이름 아래 생산자 중심의 자율적 농산물 수급 안정 체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행정 주도에서 탈피해 농가 스스로 생산량을 조절하고 출하를 관리하는 시스템 전환을 더 이상 늦춰선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이 경우 산지 폐기에 소요되는 막대한 예산도 줄일 수 있다.

2023년에는 사단법인 제주농산물수급관리연합회 설립을 위한 농정 거버넌스 조성 에 시동을 걸었다. 법인 설립 전담팀 운영, 토론회와 설명회 등을 이어갔다. 이를 통해 그해 7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수급관리연합회가 출범했고 8월에는 '제주 농산물 자율적 수급 안정을 위한 지원 조례' 제정으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2024년 4월에는 수급관리연합회에 민간 위탁한 제주농산물수급관리센터가 문을 열었다. 올 7월엔 제2기 수급관리연합회가 새롭게 꾸려졌다.

이 과정에 2015년 결성된 제주당근연합회의 활동이 도움이 됐다. 제주당근연합회는 그간 생산자, 행정, 농협이 협력해 비상품 자율 폐기 등 생산자의 자구 노력과 함께 가공업체 납품, 분산 출하 등 가시적 성과를 도출했다. 조기 출하·저장 등 생산품을 시장에 내놓는 시기를 조절하고 창구를 일원화했다. 이 같은 생산자 의식 전환과 협력 체계 운영으로 당근연합회는 수급 불안 문제를 극복한 바 있다. 당근 품목의 사례는 수급관리연합회의 탄생에 힘을 실었다.



ㅣ사전 수급 조절에서 브랜드 마케팅 단계까지

수급 안정 7대 품목으로 선정된 작물은 제주 농산물 생산량의 약 80%를 차지하는 감귤, 무, 당근, 양배추, 브로콜리, 마늘, 양파다. 순차적으로 품목을 확대하며 생산자 단체가 참여하는 현장 중심의 수급 관리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2023년 6월 제주농산물수급관리연합회 창립 총회. 제주도 제공

이를 계기로 계약 거래 활성화, 판로 다변화 등 농산물 수급 안정을 위한 사업들이 다양하게 진행됐다. 개별 품목 단위로 분산됐던 유통 구조를 생산자연합회, 주산지 농협, 제주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과 협력해 통합 유통 체계로 바꾸는 데 힘을 쏟아 왔다.

이런 노력은 월동채소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제주도는 서울 가락도매시장 기준으로 2024년산 월동채소 가격이 전년 대비 양배추 52.7%, 월동무 129.8%, 당근 37.6% 각각 올랐다고 전했다. 제주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 2024년 매출액이 전국 원예조공법인 54곳 중 1위를 달성한 점에도 주목했다. 생산량 감소 영향도 있었지만 수급관리센터의 역할이 컸다고 했다.

2024년 4월 열린 제주농산물수급관리센터 개소식. 제주도 제공

수급관리연합회와 수급관리센터가 제주에서 첫발을 디딘 배경엔 양파, 마늘, 무 등 작목 전환이 가능한 제주 농업의 특성이 반영됐다. 주산지 중심으로 운영되는 다른 지역과 달리 제주는 종합적인 품목 관리 필요성이 제기되면서다.

제주 농산물 수급 안정 사업의 추진 모델에서는 사전 수급 조절, 파종, 수확 출하, 브랜드 마케팅 단계를 차례로 제시했다. 각 단계에 따라 소비량과 그 추이 분석, 재배 면적 산출과 조정, 지역·농가별 재배 면적 할당과 권고, 최종 파종 면적과 예상 생산 물량 확인, 가격 동향 모니터링, 출하 조절 계획 수립 등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 현장의 정보를 빠르게 체감할 수 있는 농가들 스스로 전략을 짜게 된다. 현 제주 농산물 수급 안정 조례에서도 수급관리센터가 ▷제주 농산물의 수급 관리 실행계획 수립·시행 ▷품목별 재배 면적, 출하 정보와 가격 정보 제공 지원 ▷품목별 제주 농산물 수급 안정 대책의 수립 지원 ▷제주 농산물 수급 안정을 위한 가격 안정제 지원 ▷제주 농산물의 가공 처리·마케팅 지원 ▷품질 규격 위반 사항에 대한 지도·단속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했다.

고광덕 제주농산물수급관리센터장은 "변화를 만들려면 생산자들의 의식 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생산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기 위해 주산지 농협들이 협력 체계를 구축해서 시장에 공동 대응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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