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의 하루를 시작하며] 민주주의에 중도는 없다

[김동현의 하루를 시작하며] 민주주의에 중도는 없다
  • 입력 : 2025. 10.29(수) 01:00
  •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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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김수영 시인은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서는 이만하면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라고 했다. 1962년 한 시인이 한국언론의 자유는 '이만하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한 것에 대해 분개하며 던진 말이다. '이만하면'이라는 말의 중간사(中間詞)를 부정하는 김수영의 이 같은 태도는 단지 '언론자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2·3 내란 사태 이후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내란의 종식과 합당한 처벌이라는 당연한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계엄 당일 대통령실 CCTV에서 공개된 국무위원들의 태도는 우리 사회 기득권 엘리트 관료들이 얼마나 비겁하고, 무능한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헌법과 법률에 의한 권한의 행사라는 민주적 기대를 걷어차버린 그들의 행태에는 합당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 명백한 불법 행위의 증거에도 구속 영장을 기각하는 법원의 태도는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일이 여전히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비상계엄이 해제된 다음날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 모였던 4인 중 한 명인 이완규 전 법제처장은 국회 법사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인 선서를 거부했다. 선서를 거부한 그가 내세운 것 역시 법률이었다. 헌법을 무너뜨린 자들이 법률에 기대어 스스로를 변호하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시도'였다. 계엄 포고문 1호만 보더라도 당시 계엄선포의 불법성이 명확하다. 하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 고위직 어느 누구도 내란을 내란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무죄 추정의 원칙'을 내세우면서 계엄과 내란은 다르다고 하고 있다. 심지어 비상계엄 해제가 국민의힘 의원들에 의해 주도됐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는 제2의 건국전쟁이라고 말하고 있다. 내란을 내란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정당이 선거를 또 다른 대결의 국면으로 몰고가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연이은 민주당의 실책을 빌미로 판세를 바꿔보자는 심산이다. 이 정도면 몰염치의 극치다.

윤석열의 내란 행위와 동조, 가담한 자들에 대한 철저한 사실 규명과 합당한 처벌 없이는 국민의힘이 그렇게 외치는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12.3 비상계엄 선포는 민주주의 외피를 쓰고 영구 집권을 꿈꾸었던 자들의 적극적 동조가 만들어낸 결과다. 다른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상상을 용인하지 않으려 했던 이들. 민주주의가 부여한 권력에 만족하지 못했던 몽상가들. 권력에 빌붙어 돈과 명예와 권력의 무한 복제를 원했던 기득권 엘리트들. 수십, 수백 억 짜리 주택과 땅을 가졌으면서도 멈출 수 없는 탐욕을 숨기지 않았던 이들.

섣부른 화해는 역사의 퇴행이다. 그들에게 자비는 없다. 내란종식은 '이만하면'이라는 말로 이뤄지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중도로 지켜지지 않는다. <김동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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