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우리들의 교복시절] 쪽지를 접는 방법

[영화觀/ 우리들의 교복시절] 쪽지를 접는 방법
  • 입력 : 2025. 07.14(월) 03:30
  •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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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들의 교복시절'

[한라일보] 1997년에는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중학교 시절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더 많은 것들이 규정되었고 더 빨리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좋은 친구들을 만났지만 그들이 경쟁자인 것은 변하지 않았다. 여러 의미에서 초조했고 불안함이라는 감정이 싹 트던 시기로 기억한다. 매일 교복을 입고 오르막을 올라 학교 정문에 들어서면서 이 3년이 지나면 나는 또 어디로 들어갈 지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나는 과연 어딘가와 무언가와 누군가를 통과할 수 있을까를 묻고 또 물었다. 10대의 내가 20대의 나와 만나기 직전의 시기, 하루의 절반 이상을 교복을 입고 지내면서 이 거추장스러운 습관을 벗는 날을 꿈 꾸던 시절이었다. 지나간 것이 모두 그립지는 않지만 때로는 그리움보다 먼저 도착하는 시절도 있다.

대만 영화 <우리들의 교복시절>은 1997년 고등학교 야간반에 입학한 아이(진연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엄마의 강요에 의해 대학 입시에 유리한 명문고에 입학한 것이지만 주간반의 성적에는 미치지 못해 야간반을 선택한 것이기에 아이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어쩐지 진짜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그를 속상하게 만든다. 학교의 전통에 따라 주간반과 야간반은 한 책상을 나눠 쓴다. '책상 짝궁'인 민(항첩여)을 만나게 된 아이는 둘만의 소통 창구인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는 쪽지로 가까워진다. 같은 공간 속 다른 시간을 사는 아이와 민은 세계를 건너 서로에게 도착하는 소중한 또 하나의 명찰 '친구'를 갖게 된다. 그리고 둘 앞에는 시차를 두고 루커(구이태)가 등장한다. 아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탁구장에서 그를 만나고 민은 이미 루커를 좋아하고 있던 차 였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년이 하필 동일인이라는 것이 갓 지은 따끈한 우정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아니 우정과 첫사랑은 왜 서로 눈치 보지도 않고 마음 안의 자리를 자꾸만 넓혀가는 것일까.

아이의 혼란이 비단 감정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 <우리들의 교복시절>을 단순한 청춘 로맨스 장르에 그치지 않게 만든다. 이 갈등이 누가 누구를 더 좋아해서 생기는 일이 아님을 아이는 번뜩 알게 된다. 잊었어? 그와 민은 주간반이고 나는 야간반이야. 계급 사회를 일찍 겪어본 이들에게 <우리들의 교복시절>은 그저 풋풋한 로맨스로만 보이지 않는다. 10대 후반은 꿈 꾸는 나의 모습으로 쉽게 변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나이이기도 하다. 질서와 규칙이 필요한 단체 생활에서 오와 열을 맞추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서열이라는 것을 나 또한 교실과 강당 안에서, 운동장 위에서 배웠다. 책가방의 무게에 비하면 한 없이 가볍기만 했던 성적표가 그토록 육중한 무게를 지난 종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도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맞대고 등교하던 친구와의 거리가 조금 벌어지면 그 틈에는 질투와 속상함이 뭉게뭉게 피어 올랐고 하교 후 친구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입이 떡 벌어지는 시각적 충격을 받은 적도 있었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의 개성과 고유성을 가진 채 살아가라는 세상의 아포리즘은 귀에 들어 오지도 않았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이 이상하게 슬프던 시절이었고 그런 종류의 슬픔은 그 전 까지는 겪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으니까.

<우리들의 교복시절>은 사랑과 우정 사이, 그 틈에 있던 누군가의 시절을 들여다 보는 영화다. 쉽게 성장통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가능한 당사자의 감각으로 구체화하기 위해 당도를 조금씩 빼 가면서 시절의 향수를 그저 달콤하게만 묘사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세상이 규정할 수 없는 나를 찾아가는 일 또한 이때 시작한다. 아무리 같은 교복을 입혀 놓아도 우리는 각자 다르고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니며 내 인생을 채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뿐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것은 내가 느낀 지금의 슬픔이 영원할 리 없다는 안심의 이정표가 된다. 아이도, 민도 그리고 루커도 털어놓지 못한 사연들을 서로에게 천천히 꺼내면서 이들의 관계는 위기와 갈등 이후에도 무너지지 않고 복원된다. 그렇게 솔직함의 용기를 꺼내 들어 삼각관계에서 중단되지 않는 이들의 만남은 다시 흔들리고 깨질 것이고 시절의 찰기로 언젠가는 다시 붙기도 할 것이다. 영화는 세 사람의 시간들을 시절인연이라고 못 박지 않으며 교복을 벗을 이들을 조용히 응원하는 쪽을 택한다. 청춘의 한 장을 일필휘지로 완성한 이가 어디 있을까. 오탈자와 비문과 은어로 가득했던 우리의 서투른 망설임 이야말로 잊히지 않을 청춘의 한 장이 아닐까. 세상에는 나만의 쪽지를 접는 방법이 수천 개가 될 것이고 그것이야 말로 우리 사이의 특별한 언어가 된다는 것, 답안지에 쓸 수 없는 진짜의 시절이 그 안에 있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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