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우의 한라칼럼] 조용한 다수, 세상을 움직인다

[송창우의 한라칼럼] 조용한 다수, 세상을 움직인다
  • 입력 : 2025. 05.13(화) 01:00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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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5월. 완연한 봄 한가운데 있어야 할 이 시기에도 태풍 같은 강풍과 비바람이 몰아치고, 찬 기운마저 감돈다. 계절이 어긋난 듯한 날씨 속에서도 산과 들은 여전히 푸르게 물들고, 곳곳에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 신록의 계절이 분명하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거리를 걷다 보면 감귤꽃이나 아카시아꽃처럼 익숙하고 향기로운 꽃 냄새가 코끝을 스치기도 하고, 때로는 구실잣밤나무꽃의 비릿한 냄새도 뒤섞인다. 5월의 풍요로움을 이루는 것은 결코 화려한 꽃이나 달콤한 열매를 맺는 식물들만이 아니다. 산비탈에서 비뚤비뚤 자라나는 소나무, 척박한 땅에서 뿌리내린 애덕나무, 발아래 숨은 듯 자라는 민들레와 제비꽃, 소루쟁이, 억새, 잔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풀과 잡목들까지 모두가 봄을 만들어내는 주체들이다.

이들은 작고 하찮아 보일지 몰라도, 봄 햇살 아래 곤충들과 공생하며 생명을 잇는 고귀한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다. 화려하지 않아도, 주목받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도 산과 들을 살아 있게 만든다. 이들이 사라지면 자연은 금세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 사회도 다르지 않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들풀들이야말로 거친 땅을 붙잡고 산을 푸르게 하듯, 조용한 시민들이야말로 이 사회를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고 있다. 그들은 소리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때로는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꺾이지 않는다. 이름은 없지만, 그 존재 자체로 세상을 숨 쉬게 한다.

이들은 성실히 살아왔고, 화려한 직업을 갖지 않았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겉보기에 침묵하고 복종하는 듯하지만,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권력자들의 탐욕과 이기심이 드러났을 때, 군대를 앞세운 쿠데타를 온몸으로 막아낸 것도 바로 이 시민들이었다. 헌법재판소가 권력자를 파면하는 만장일치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건, 정의를 믿고 기다려준 시민들의 용기 덕분이었다. 단 열 명의 대법관이 5000만 국민의 투표권을 흔들려할 때도, 이들은 집단지성으로 맞서 저지했다.

권력은 때때로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려 한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기 위해 타인을 억누르려 한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이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타자를 약탈하려는 본능을 지녔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 존재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본능을 절제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돈 많고 힘 있는 사람일수록 더 깊은 책임을 져야 한다. 평범한 시민이 떠나고 권력자들만 남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결국 그들 사이에서도 약자는 생겨날 것이며, 끝내는 혼자 남은 세상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위치에 있는 권력자나 돈 많은 사람들이 일반 시민들의 고통에 공감해야 함께 사는 사회가 된다. 들풀처럼, 시민처럼. 보이지 않아도, 그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송창우 제주와미래연구원장·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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