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25)안덕면 사계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25)안덕면 사계리
농수산업과 관광이 멋진 조화를 이루는 마을
  • 입력 : 2022. 11.25(금)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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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어떤 미사여구보다 냉엄한 숫자가 현실을 꿰뚫어 극명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사계리라고 하는 마을에 민박과 펜션이 많이 보이기는 하는데 숙박을 할 수 있는 객실 수가 얼마나 되는 지 알아보면 100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소비자의 평가는 현명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며 명사벽계(明沙碧溪) 그 깨끗한 모래 푸른 물-沙溪里 자연을 만끽하고 싶은 욕구. 명승지라고 할 수 있는 관광자원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본래의 삶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아가는 마을공동체의 모습이 더 감동적인 것이다. 관광객만을 위한 개발된 시설보다 그 반대의 측면에서 주민들의 삶과 관광이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향유하고 싶은 사람들의 선택이 사계리의 모습으로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모델이다. 농수산업이 지닌 경관적 가치를 온전하게 마을경쟁력으로 굳건하게 지켜낸 마을. 산과 바다 그 사이에 밭흙이라고 하는 삶의 향기가 무언의 메시지로 사람들을 머물게 하는 것이다. 쉽게 현혹되지 아니하는 우직함이 얻는 결실은 이러한 모습이라고 확인시켜주는 사계리다.

1702년 섬 제주의 모습을 그린 탐라순력도에 산방산이 등장한다, 산방배작(山房盃酌)이라는 이름으로. 술은 산방산에서 시원스런 절경을 내려다보며 마셔야 으뜸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풍광에 취했으니 술이 무슨 소용이랴. 스토리텔링으로도 격이 높은 풍류가 서려있다. 그 산방배작에 그려서 표기된 흑로포(黑路浦)는 '검은질개'의 한자표기다. 이 포구를 중심으로 반농반어촌이 번창을 거듭하여 왔다.

안덕면 서남부에 위치한 마을이다. 동쪽으로는 산방산, 북쪽으로는 단산 그리고 남쪽에는 바닷가에 형제섬. 서쪽으로는 대정읍 상모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2.7㎞ 해안가를 따라서 취락이 형성되어 용머리, 산방산 등 숱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대전동, 송죽동, 용해동, 신항동 크게 네 개의 동네가 모여서 사계리를 이루고 있다. 용머리에서 송악산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바닷가에 떠있는 형제섬의 묘한 매력과 함께 세계 어디 내놔도 뒤질 이유가 없는 풍광이다. 그래서 이 형제해안도로가 '한국의 100대 아름다운 길'에 선정되어 있는 것. 필자는 그 위상에 불만이다, 세계 10대 아름다운 길이라면 모를까.

풍광제일 사계리라고 하는 마을공동체의 전통을 사계팔경이라고 정형화 시켰다. 산정망해(山頂望海) 산방굴사(山房屈寺) 용두단애(龍頭斷崖) 흑포잠여(黑浦潛女) 백사만파(白沙萬波) 형제일출(兄弟日出) 향교노송(鄕校老松) 단산정보(簞山頂步)라고 하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풍광의 절대적 가치들이다. 풍광의 수려함뿐만 아니라 그 속에 조상들이 풀어놓은 전설 에너지가 기름지다. 산방굴사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산방덕이의 눈물이라는 데에서부터 진시황이 보낸 지관이 잘라버렸다는 용의 잔등과 꼬리 이야기까지 전설의 보고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명에 남아있는 제주어의 깊은 맛 또한 매력적이다. 얼쿤이동산, 웽이덕, 쿳남밭, 굴개낭목, 날쿰구석, 오로코미물, 납데기빌레여, 아세미물 등 정감 넘치는 저 곳들을 찾아다니는 것도 사계리를 느끼는 방법 중에 하나다. 지질학적으로도 엄청난 학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요소가 많아서 이미 지질트레일 코스가 개발되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송 정 사계리장에게 사계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물었더니 '인재가 많은 것' 이라고 했다. 사계리 출신으로 세상에 나가서 다양한 분야에 공헌하는 분들이 많다는 자부심. 고위직에 오른 출향인사들을 열거하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사계리 사람들 중에 출세한 사람들이 많은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물으면 넉넉한 웃음과 함께 이렇게 대답한다. '조상들이 산방굴사나 할망당에 정성을 많이 들여서 그렇다'는 것. 민속신앙을 가져다 겸손화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 표정들 속에 역력하게 드러난다. 분명 어떠한 마을공동체의 풍토랄까 인재를 키우고 이끌어주기 위한 시스템이 있을 것인데 노출을 꺼리는 것이라고 면박을 줘서 끌어내려 했지만 어머니, 할머니들이 정성으로 잘 빌어서 자손들이 잘되는 마을이라고 강변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분명한 것은 '땅이 인물을 키운다'는 전통적 믿음. <시각예술가>





단산이 보이는 풍경
<수채화 79㎝×35㎝>


11월의 눈부신 햇살을 반사해내는 사계리의 소박한 모습. 모두가 있다. 길과 집과 밭, 그리고 산, 돌담. 덩치는 큰데 나뭇잎이 다 떨어진 활엽수와 키는 작으나 끊임없이 짙은 초록을 보유하고 있는 사철나무. 위치하고 있는 곳에 따라 자신의 풍경 속 역할을 충실하게 해주고 있다. 이미 겨울이 되었음에도 초록이 왕성한 것은 남국의 정취라고 말없이 설명하는 듯하다. 밭담의 왼쪽 길에 쏟아지는 광선의 양을 사철나무가 가로막으면서 극적인 공간감이 그림자에 의해 발생되었다. 그러면서 두 세대 이상은 되었음직한 집들이 낡은 지붕과 함께 중경에서 향토성을 보여주고 단산과 집 사이에 듬성듬성 솟아난 나무들이 멀리 단산과 이격 작용과 견인력을 동시에 보여준다. 모든 것이 빛의 산물인 듯, 그렇게 풍경이 보유한 거리에 따라 광선의 미세한 차이는 악보에 그려진 그대로 연주하듯 마을 분위기를 노래한다. 단산이 지닌 형태 못지않게 그 내부의 색들이 이 계절을 뿜어내고 있다. 사람이 사는 곳에 나지막하면서도 병풍처럼 펼쳐진 저런 산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포근한 세상을 창조하는 것인가! 저 산 남쪽에 위치하고 있음을 모든 물상이 해시계가 돼서 보여주고 있다. 바람 한 점 없을 것 같은 이 고요한 평화, 눈부신 시간. 마을 풍경을 그린다는 것은 삶의 영역을 그리는 일이다. 돌담 구멍 하나도 나뭇가지 하나도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일부라는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절절함으로 그리는 것이다. 저 소박한 삶이 있어 그렇다.





산방산 남쪽절벽
<수채화 79㎝×35㎝>


색을 넣으면 시각적으로 사실에 가까우나 형태가 지닌 본질에 두꺼운 껍질을 씌우는 일이 되곤 한다. 섬 제주를 대표하여 태평양을 바라보는 기상이 느껴지는 산방산 남쪽. 바닷가에서 산방산을 보면 시시각각 태양광선의 변화에 따라 만물상이 연출된다. 오직 빛과 형태에 의해서 본질이 드러나는 경우를 그리려니 연필소묘의 강점을 동원해야 했다. 절벽의 미세한 흐름들이 연필선의 동선에 의하여 광선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칠했을 경우에 가장 중요한 절벽의 동세가 사라지고 마는 것. 색을 칠하지 않아도 연필소묘의 맛에 의하여 햇살은 더욱 눈부실 수 있다. 초겨울 오후 4시 상황. 햇살의 두께가 산방산의 서쪽에서부터 밀려든다. 그 영향으로 산은 거대한 명암의 농도 차이에 휩싸이게 되고 숨은그림찾기 절벽은 하나하나의 형상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사람의 얼굴에서 동물의 모습과 일상에서 만나는 숱한 시각 경험들이 절벽에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닷가 저 멀리 태평양을 향하여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 웅장하다. 이토록 아름답고 품격 있는 절벽을 보유하고 있는 사계리가 부럽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절벽을 상상력의 보고로 여긴다. 장엄한 매력과 함께 안온한 그 무엇을 느끼게 하는 저 모습에서 웅대한 꿈이 대붕의 날개처럼 펼쳐질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바다와 지척인 곳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산을 바라본다. 그것도 오묘한 절벽의 힘을 느끼면서. 산의 전체 모습 못지않게 어떤 부분을 그리는 것 또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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