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정의 하루를 시작하며] 다시, 또 부탁합니다

[김문정의 하루를 시작하며] 다시, 또 부탁합니다
  • 입력 : 2022. 05.25(수) 00:00
  • 김채현 수습기자 hakch@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봄, 유채꽃 노란 물결 안에 서면 사람도 꽃이다. 누구나 환하게 웃고 잠시라도 행복하다. 저마다 즐거운 '인생샷', 한 컷이다. 유채꽃밭에 강아지가 버려졌다. 끔찍한 '견생샷'이다. 혀를 말아 넣은 입을 노끈으로 꽁꽁 묶어 테이프로 칭칭 감고 앞다리는 등 뒤로 꺾어 묶었다. 이슬 한 방울 마실 수 없게 묶인 입 주변은 상처로 진물이 나고 눈동자에는 원망과 공포가 어린다. 내장 칩을 보니 '주홍이, 사설 유기견 쉼터에서 보호 중'이다. 아름다운 꽃그늘이 섬찟하다.

산 채로 머리만 내놓고 땅에 묻히거나 양파 망에 꾸러미로 담겨 길가에 버려진 갓난 강아지들. 누가 아프다고, 목숨 끊어지기 전에 생매장을 하는가. 양파들이 망 안에서 꼬물꼬물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자꾸 마음이 묶이고 저리니 이 컷들은 오래도록 기억 한 편에 낱장으로 붙어 나풀대겠다. 애써 구조하고 끝없는 사랑으로 돌보는 세상인데도 무책임한 유기와 파렴치한 학대도 줄지 않는다. 동물n번방에는 학대공유영상이 넘쳐난단다. 참 독하고 나쁘다.

7년 전, '하루를 시작하며' 여는 나의 첫 글은 '멍돌이를 부탁합니다'였다. 어릴 적 물림사고로 강아지도 무서운데 떠돌이 개는 더없이 두렵고 싫은 존재였으므로 잘 돌보고 매어두자 했었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2년차 고양이집사다. 생후 3개월에 보육원에서 데려온 고양이는 이제 제법 늠름하다. 어설픈 육묘의 시간을 보내고 어엿해진 집사는 날선 이빨과 발톱이 그다지 두렵지 않다.

출퇴근길, 늘 작은 보조가방에 소분된 사료를 넣고 다닌다. 나만의 이름으로 불리는 길고양이들. 만남은 잠시 잠깐이다. 간간이 한동안 보이다 궁금하게도 사라진다. 아마 이소했거나 행여 죽은 것일 텐데 담담하기로 한다. 길 위의 생은 괴롭힘 없이도 위험천만하고 비참하다. 겨울엔 우리 동네가 따뜻해서 더 좋다. 거의 물이 얼지 않아 걔들에게 다행이다. 내게도 무관심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싫어하는 이들도 이해된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강권도 분쟁도 없이 그저 최소한의 보살핌을 하려 한다. 쓰레기가 될까, 그릇도 없이 그루터기나 맨홀뚜껑, 화단경계석 위에 한 줌 놓으며. 소심한 돌봄이다.

최근 한 중소기업이 코 주름으로 강아지 신상을 확인하는 앱을 개발했다. 끝없이 움직이는 강아지를 AI기술로 찍는데 인식 어렵던 비문이 선명히 읽혀서 아주 정확하단다. 이름표 목걸이는 잃어버릴 수 있고 내장 칩은 비용이 드는 데다 몸 안에 이물질을 넣는 거부감이 있는 반면, 스마트 폰 앱으로 비문을 찍어 저장해두면 간단하게 생체인식을 할 수 있으니 잃어버린 반려동물을 찾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무분별한 유기도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19로 펜데믹 퍼피가 세계적으로 급증했단다. 외로워서 들이더니 이제는 유기가 걱정이라는데 부디 사람과 동물이 따뜻이 모여 살도록 다시, 또 멍냥이들을 부탁합니다. <김문정 시인>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1422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