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그림자의 호위

[영화觀] 그림자의 호위
  • 입력 : 2022. 02.11(금)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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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 메이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때론 존경으로까지 이어진다. 결혼한 친구들에게 결혼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었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꽤 많은 이들이 사랑보다 존경을 상대에 대한 감정의 확신이라고 얘기해줬다. 애정에 더해진 존경은 불타는 사랑보다 더 강렬하고 매혹적이다. 누군가에게 연정과는 또 다른 이유로 설렌다는 것은 드물게 특별한 감정이라 타인에 대한 선망은 순식간에 불꽃처럼 타오르고 나비처럼 날아오르기 마련이다. 당신이 나를 사랑해줬으면 하는 바람보다 높은 곳에 자리한, 내가 당신을 믿고 지지하는 것처럼 당신 또한 나를 져버리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선망을 시작한 이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다. 그에게서 나를 보고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그가 완성된 나처럼 느껴질 때 이 위험한 매혹은 한 인간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시야 앞에 빛처럼 번쩍하고 당도하는 그 선망이 시작되는 순간 그림자처럼 따라올 실망을 우리는 앞에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매니아 팬덤을 형성한 변성현 감독의 신작 '킹메이커'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정치인 '김운범' 앞에 그와 뜻을 함께하고자 선거 전략가 '서창대'가 나타나 함께한 시간을 담고 있는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정치판의 전략과 암투, 빛과 어둠을 세련되게 그려낸 '킹메이커'는 무엇보다 상대에 대한 동경이 시절의 풍경이 되는 순간들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작품이기도 하다. 소신을 지키기 위해 정도를 택했지만 번번이 낙선하고 마는 정치인 김운범 앞에 어느 날 그를 선망하던 선거 전략가 서창대가 나타난다. 두 사람은 정치에 대한 목적은 같지만 승리를 위한 방법은 전혀 다른 이들이다. 하지만 신념을 위협하는 패배의 앞에 맞닥뜨린 김운범은 옳지 못한 수단을 택하더라도 성공의 문을 영리하게 열 줄 아는 서창대의 손을 잡는다. 김운범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목표를 위한 열정으로 탁월한 전략을 짜내는 서창대는 결국 김운범을 대통령 후보의 자리에 올려놓는 데 성공한다.

살면서 나를 알아봐 주는 이들의 존재는 귀하고 감동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서창대에게 매혹되는 김운범도, 선망의 대상이었던 김운범의 곁에서 자신의 최선을 선보일 수 있게 된 서창대도 서로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강렬한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전작인 '불한당'에서도 두 남자의 특별한 감정적 유대를 통해 미묘한 심리 드라마를 탁월하게 연출해냈던 변성현 감독은 정치 드라마라는 외피를 입은 '킹메이커'에서도 두 남자의 관계에서 피어나는 감정들을 섬세하게 건져 올린다. 일명 '브로맨스'라고 불릴 정도로 멜로드라마적인 캐릭터 세공과 연기 연출이 돋보였던 '불한당'에 이어 '킹메이커' 또한 배우들의 새로운 면면을 발견할 수 있는 반가운 작품이기도 하다. '불한당'을 통해 연기파 배우에서 팬덤형 배우로도 주목받게 되었던 배우 설경구는 '킹메이커'에서는 정중동의 무게감, 강렬한 카리스마와 함께 예민하게 떨리는 눈빛 연기로 보는 이들을 사로 잡는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가 갖는 책임감과 그 빛에 눈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다잡는 간절함은 배우 설경구의 복합적인 표현력으로 완성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메이커'는 누구보다 배우 이선균의 영화다. 드라마 '파스타'와 '나의 아저씨', 영화 '화차'와 '내 아내의 모든 것' 등 주로 상대 여성 캐릭터의 장점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서포터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 내왔던 배우 이선균은 '킹메이커'를 통해 '그림자 무사'로서 자신의 탁월함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선망의 대상을 향한 갈망과 자신의 확신에 대한 미세한 불안, 상대와 손을 잡는 순간의 떨리는 쾌감과 스포트라이트에서 비껴선 채 어느새 모호해진 욕망의 대상을 바라보는 미묘한 시선까지 배우 이선균은 설득력 있는 연기로 '킹메이커'의 모든 순간을 채워냈다. 덕분에 아마도 이토록 독특한 짝사랑의 서사를 다룬 정치 드라마는 한동안 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킹메이커'는 미세한 빛이 어둠을 밝히기까지 얼마나 오래 그림자가 빛을 따라왔는지를 이야기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극 중 서창대라는 그림자를 맡았던 배우 이선균은 그림자의 호위가 얼마나 빛나는 것인지를 알려주는 연기를 보여줬다. 끝내 영화의 마지막 서창대는 빛의 곁에서 멀어져 가는 그림자의 형상으로 남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또렷하게 기억되는 것은 배우 이선균의 진가다. '킹메이커'는 마치 빛의 굴절처럼 주인공 곁의 캐릭터들을 만나며 조금은 무난하고 편안하게 보였을 수도 있을 배우 이선균이 얼마나 깊은 자신만의 저수지를 가지고 있는 배우인지를 입증하는 작품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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