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人터뷰] 제주출신 김영규 주한미군사령부 공보관

[한라人터뷰] 제주출신 김영규 주한미군사령부 공보관
"판문점서 교류·화해의 길 열리길 기대"
  • 입력 : 2018. 04.22(일) 21:00
  • 부미현 기자 bu8385@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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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판문점 역사의 산증인… 정상회담 공보관
주한미군사령부·유엔사·한미연합사서 공보업무


오는 27일 판문점에서 2018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는 가운데 판문점을 찾는 주요 인사와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공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제주출신 김영규 주한미군사령부 공보관(71·사진)의 활약상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는 1984년부터 한미연합사·유엔군사령부·주한미군사의 공보관으로 일을 해오고 있다. 김 공보관은 지난 18일 판문점 기자단 투어에서도 기자들의 쉴 새 없는 질문에 막힘없는 답변을 내놓으며 눈길을 끌었다.

그가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유는 그의 경험과 공보관으로서의 업무 수행 능력 때문이다.

"10년 전 은퇴 시기가 되자 여러 언론에서 '남쪽 끝에서 태어나 북쪽 끝에서 일하는 사람', '판문점의 산증인'이라고 인터뷰했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담당하는 일이 전문 분야라서 미측의 요청에 의해서 계속 근무하고 있습니다. 공보실에서는 연령이나 경험으로는 최고참입니다. 공보관 일이라는게 모든 이슈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제가 오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미군이 그 점을 평가해준 것으로 봅니다."

그는 제주시 일도동에서 나고 자라 제주북초등학교, 제주중학교, 오현고등학교, 연세대학교를 졸업했고 30살에 입대해 주한미군에서 복무하는 대한민국 육군 카투사 생활을 했다. 군 생활을 하며 영어 미2사단 신문 '인디언 헤드' 신문기자로 뽑혀 기자 생활을 하다 전역 후 미군 측의 스카우트 제의로 공보실에서 근무하게 됐다.

그는 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 회담을 모두 지켜봤다. 1991년까지 판문점에서는 1년에 30~40차례씩 각종 회담이 열렸다. 판문점이 유엔사 관할이므로 유엔사 공보관으로서 그 회담들을 모두 지켜봐 왔다. 1976년 8월 18일 발생한 도끼만행사건을 비롯해 판문점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1976년 당시 제가 인디언 헤드 기자였을 때입니다. 사건 발생후 8월 21일 미2사단 공병대가 사건의 발단이 된 미류나무를 자르러 들어갈 때 기자로서 취재에 나섰지요. 당시 작전명이 폴 버니언(paul bunyan)이었습니다. 나무를 자를 때 북한이 다시 도발하면 공격한다는 계획이었고, 한반도에 전쟁 가능성이 극도로 높아지는 위기였습니다."

판문점에서 개최될 2018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의 발걸음을 내딛을 세계사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어느 때보다 내외신 기자들의 취재 열기가 뜨겁다. 그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공보관으로서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1985년도에 남북 고향방문단이 처음으로 오가게 됐는데 그 전까지는 판문점이 유엔군과 북한군 간의 군사적 대결만 있었던 곳입니다. 대결의 장소였던 셈이죠. 그러다가 방문단이 서로 왕래하면서 교류와 화해의 장소가 됐습니다. 아직도 북한군과 유엔군은 대결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정상회담 열리면 교류·화해의 길도 열리리라 봅니다." 서울=부미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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