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100)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마을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100)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마을
생명 공간 강정천 품어안은 평화문화마을을 꿈꾸며
  • 입력 : 2016. 09.06(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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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에서 강정까지 구름을 뚫고 아침이 밝아오는 광경(위)과 서쪽 강정포구에서 해군기지에 이르는 모습(아래).

풍부한 수량 바탕 구럼비케 일대 등서 논농사
쌀농사 통한 결속력·저력 수눌음 정신 다져
해군기지 건설로 '아름답던 삶의 터전' 옛말



'강정에 애긴 곤밥 주민 울곡 조팝 주민 안 운다.' 얼마나 흔하게 쌀밥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이었으면 다른 마을 아이들은 쌀밥 주면 울다가도 그치는데 강정 아이들은 오히려 조로 지은 밥을 주면 울음을 멈췄겠느냐는 속담. 척박한 화산섬에서 논농사가 가능한 곳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곳이 강정이다. 건천이 대부분인 섬 제주의 여건에서 강정천은 풍부한 수량을 보유한 곳이다. 하구 멧부리소에서 원류로 추정되는 영실 동북방향 폭 50cm까지 조사된 총 길이는 1만5889m. 소가 7개, 교량 6개, 폭포 13개, 지류가 10개 정도가 있는 강정천은 마을의 번창을 가져온 가장 중요한 환경적 요인이었다. 마을 이름 또한 원래 가내(加內)/가래(加來)로 불린 것은 지금도 웃동네 동쪽에 있는 동네를 '더냇동네'라고 하는 것으로 볼 때 냇가와 관련된 지명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제주에서 마을 이름에 과감하게 江이 들어간 것은 물과 관련하여 육지 어느 강가 마을이 부럽지 않다는 자신감이었을까? 거기에 汀까지. 용천수 또한 그 수량이 엄청나서 그 물을 가지고 논농사를 충분히 지을 수 있었다.

해안가 가까운 곳에서 풍부한 수량이 솟아나 바다로 향하는 꿩망물.

논밭이 있었던 곳의 지명이 정겹다. 곳물케, 불컨터케, 큰바량케, 앞물케, 청케, 함벡이골케, 안강정케, 동해물케, 빈녀코지케 등은 용천수를 가지고 논농사를 했지만 가장 큰 면적을 가지고 있었던 구럼비케는 강정천의 물을 끌어와서 농사를 지었다. 수 백년 세월, 3월 초가 되면 구럼비케에 논이 있는 답주들이 모두 나와서 냇길이소에서부터 구럼비케까지 물의 논골을 따라 잘 흐를 수 있도록 '도물맥이' 작업이라는 청소를 했다. 물맥이가 끝나면 수량을 분배하는 돌로 만든 장치인 '도꼬마리'에 모여 풍년농사를 위해 물 분배 책임자인 수감을 위촉하고 그에게 전권을 준다. 답주들은 수감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자기 논에 대한 어떠한 욕심도 허용되지 않았다. 논농사를 통한 마을공동체 운영시스템이 작동되는 것이었다. 강정의 결속력과 저력은 오랜 세월 논농사에 물을 다루면서 조직화된 마인드에서 찾게 된다. 수감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논농사 문화에서 강정의 정서적 힘이 출발했다는 생각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논농사는 시기적절한 집약적 노동력 투입을 필요로 한다. 수눌음 공동체 정신이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지 않는다면 풍년을 기대 할 수 없기 때문. 지금은 그 아름답던 삶의 터전 구럼비케 논 지역에 해군기지가 들어서 있다. 강정 논농사의 상징적 존재였던 도꼬마리도 찾을 길 없고.

넷길이소 물을 막아 서귀포시민들의 귀한 식수원이 되는 강정천 정수장을 만들었다.

해군기지로 전국적 이슈가 된 10년 세월, 강정이 잃은 수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과연 아름다운 구럼비 해안뿐이겠느냐고 하는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이 강정주민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것이냐고 지금도 따지고 있다. 해군기지 부근 길가 천막에 마을회관이라고 쓴 상징적 현판을 바라보다가 옆에 이런 글들이 적혀져 있어서 메모했다. 그동안 연행자 679명, 구속자 57명, 기소자 601명, 재판 건수 200건이라고 쓰여져 있다. 강정 주민들의 아픔이 비단 이 숫자로 전부 형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토록 절박한 반대 주장에 충돌 일변도로 대응하는 이 나라 정부를 향하여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해군기지 준공 이후에도 계속해서 펄럭이는 반대 깃발들과 집회는 앞으로 어떤 상황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조경철 마을회장

구상권 청구까지 들고 나온 현실에서 조경철(57) 마을회장은 "법률적으로 대응할 것은 하고 상경하여 투쟁할 상황이 되면 끝까지 농성과 시위를 이어갈 것입니다. 주민들은 행정이 나서서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적극적인 해결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에 분개하고 있습니다." 고권일(54) 마을회 부회장을 중심으로 강정주민들이 겪은 10년의 세월을 중간보고서 형식으로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 세대가 해군기지를 바라보면서 부모님들은 과연 무엇을 했느냐 물었을 때, 이러한 노력들을 했다고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대학생들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부모님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며 성장했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답하기 위한 것. 강정의 미래에 대하여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이 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고성수(39) 청년회장은 "해군기지의 영향을 입지 않고 강정 마을공동체가 소속감을 더욱 증대시키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마을 사업들을 펼치고 싶습니다. 교육과 복지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해군과 무관하게 잘사는 마을이 되겠지요?"라며 미래를 꿈꿨다. 그 동안의 경험에서 오는 해군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이 대단하다. 강정마을이 가진 전통적인 자존심이 그대로 흐르고 있었다. 준공 이후가 더 문제라는 탄식이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김봉규(52) 마을회 감사에게 30년 뒤 강정마을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했다. "해군이 떠나 있을 것입니다. 확신합니다. 우리 마을이 추구하고 있는 생명 평화 문화마을이 현실이 되어 있겠지요. 강정천이 생명 공간으로 탈바꿈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필요에 의해서 막아 쓰는 물이 아니라 부분 부분에 있는 소에서 취수를 하고 물은 그대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 것입니다." 해군기지 문제만 없었다면 강정은 그대로 생명과 평화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마을이었다는 역설로 들렸다.

해군기지 부근 길가 농성천막에 걸린 현판이 숙연함을 불러온다.

30년 뒤 111세가 되는 박세범(81) 노인회장에게 100억원으로 마을의 앞날을 위해 어떤 사업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바다로 흘러가는 꿩망물 수량을 엉또폭포 위까지 끌어올려 사시사철 폭포가 떨어지게 만들면 마을회가 입장료를 받아서 장학사업을 크게 했으면 좋겠소." 통이 큰 주장에 모두 탄복했다. 현실화되면 관광명소를 보유하게 되는 것이니까. 강정은 역사적 전환점에 서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픔을 이겨내는 용기가 더욱 자랑스러운 강정마을이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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