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45)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45)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오름과 하천 등 풍부한 생태계 품은 '건강 보따리’마을
  • 입력 : 2015. 06.23(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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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 옥상에서 바라본 중심부 전경(위)과 남원읍민체육대회를 앞두고 맹연습 중인 게이트볼 선수들(아래).

남원읍서 가장 넓고 자연자원 풍부한 물 맑은 곳
주민 95% 이상 감귤농사… 마을가꾸기 사업 주력
마을발전전략 테마는 ‘건강’… 환경보전에 힘 써
인구유입·제주 최고 한의원 유치에 마을미래 달려



남원읍에서 면적으로 가장 큰 마을이다. 성판악 부근에서부터 서중천을 가운데 등뼈처럼 타고 내려오며 길게 뻗어 내린 마을. 동쪽으로 수망리와 의귀리. 서쪽에는 위미2리. 남쪽으로는 남원2리와 잇닿아 있다. 3237ha 면적의 87.7%가 임야. 대부분 야초지다. 그만큼 자연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려니오름, 머체오름, 넙거리오름, 동수악, 물오름 등이 있어 비가 오면 서중천으로 오름의 정기를 녹여 보낸다. 생태하천이 이름만 붙인다고 그냥 만들어지랴. 수도가 들어오기 전까지 조상 대대로 용천수가 아니라 서중천 맑은 물을 생활용수로 사용하며 살아왔다. 이름도 정겹다. 바령소, 족쟁이소, 허개물 등.

용암 암반층에 큰 구멍과 같은 공간을 활용하여 바위그늘집으로 사용했던 선사유적지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 충렬왕 16년(1290년 경) 석곡리(石谷里)라 부른 기록이 있다. 당시에도 대표 이미지가 서중천의 바위계곡이었던 모양이다. 바위계곡을 따라 터를 잡고 살았던 사람들의 땅. 조선 초의 기록에는 불등개(火等村)로 부르다가 1864년 한남리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른다. 4·3 광풍에 폐동되어 남원과 의귀리 등 각 지역으로 나가서 살다가 1953년 다시 마을로 돌아와 재건하여 살고 있다.

오병윤 이장

오병윤(50) 이장의 명함에는 특이하게 '한남감귤정보화마을 운영위원장'이라고 되어있다. 한남감귤 판촉책임자라는 뜻이다. 주민 95% 이상이 감귤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이장이라는 소임은 감귤 값을 보다 많이 받을 수 있는 판로 확보에 전심전력 하는 모습이 당연. 그러한 영업 감각은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2003년 정보화마을로 지정되면서 각종 정보 활용과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고 있어서 차곡차곡 명성을 쌓아온 결과다. 얼핏 자부심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단단한 마을 결속력을 기반으로 2007년 자립형 마을로 선정되어 그린마을 사업, 마을기업 사업, 향토음식점 사업 등 마을가꾸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풍부한 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청정 고사리를 상품화하여 판매하고 있는 것. 환경 요인이 만들어낸 것을 특화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없어서 못 판다는 한남리 고사리다.

노인회관 앞 독특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정자.

도시인은 자연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숲길은 가장 훌륭한 치유의 수단이기에 한남리의 사려니숲과 머체왓숲을 비롯한 다양한 생태탐방로들은 약효를 준비하고 기다린다. 그럼 숲은 어디에서 에너지를 공급 받나? 오름과 들판, 그리고 하천이다. 한남리의 자연생태계는 보존 상태 측면에서 감동적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마을 발전 전략의 중심 테마로 '건강'을 선택한 것도 장점 극대화 승부수. 한남리의 풍부한 생태자원은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감싼 보따리라는 생각에서 출발하여 지속 가능한 미래의 틀을 형성하였다. 사람을 건강하게 하는 자연. 파헤치는 개발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이며, 부가가치도 높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마을주민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회관 앞에 그러한 다짐을 담아 큰 돌을 세웠다. '한남리 건강보따리마을'이란 약속의 돌. 약속은 지켜질 때 의미를 갖고 거래를 성사시킨다. 자연과의 거래다.

역사의 젖줄로서 오랜 생명력을 보여주는 서중천.

필자가 방문했을 때, 남원읍민체육대회를 이틀 앞두고 마을 주민들이 모여 연습이 한창이었다. "대표선수만 지정해서 뛰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문학수(77) 노인회장은 "150가구 정도 되는 마을이 500가구 넘는 마을과 경쟁하려면 오직 연습에 연습 밖에는 이길 도리가 없다." 한남리 주민들의 의식세계를 한 번에 파악 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름다운 승부욕이 오늘의 풍요로운 한남리를 건설하는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마을공동체의 힘을 분배받기 위해 미리 모으는 작업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마을회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마을 안에 있는 도유지 매입 문제였다. 임대주택이라도 지어서 외지에 나가있는 주민들을 부르려 해도 지목이 '전'으로 되어 있어서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마을 주민들의 이익은 공공의 이익의 범주로 생각하지 않으려는 행정논리가 억누르고 있는 형국이다.

마을공동체의 지향목표를 담은 약속의 돌.

한남리의 미래는 인구 유입에 달렸다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마을 안에 감귤복합가공단지와 국가태풍센터, 국립산림과학원의 지속가능한 시험림조성 등과 같은 의미 있는 시설과 국가사업들이 유치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주택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마을의 생명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을이 정한 건강이라는 테마를 구동시킬 독특한 비전이 있었다. 마을공동체가 나서서 제주 최고의 한의원을 유치하는 것이었다. 노인 인구 증가에 따른 현실적인 판단이기도 하지만 길게 보면 장수마을이라는 명성을 획득하지 아니하고서 친환경 이미지를 팔 수 없다는 고민에서 온 것이다.

고은희(49) 부녀회 부회장에게 30년 뒤 한남리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했다. "107세가 되실 시아버지는 변함없이 게이트볼을 칠 것이며 저는 번듯한 문화시설에서 난타를 가르치고 있을 것입니다." 청년회원들의 공통적인 주장은 서귀포시 서쪽보다 동쪽이 관광발전 면에서 뒤떨어져 있으니 이에 대한 정책적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체류형 전원휴양공간으로 한남리는 가장 적격이라고 했다. 일자리 찾기에서 비롯한 이 절박함에 해법을 내놔야 할 곳은 어디인가.

특화가 필요한 마을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들의 마을은 지금의 70대가 100세를 목표로 하는 '100세 마을 한남리'의 꿈이 현실이 될 때 가능하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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