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다시 만날 세계

[영화觀] 다시 만날 세계
  • 입력 : 2021. 05.14(금)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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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

좋은 책을 읽으면 선물하고 싶어진다. 책 선물은 어렵다는 말들이 많지만 가끔은 그 모험에 확신이 들 때가 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 어쩌면 우리는 그 마음 덕에 세상을 좀 더 좋게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어린이라는 세계'를 열 권 넘게 선물했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작은 친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침착하고 다정한 책이다. 화내지 않고 가르치는 책이라서 나는 '어린이라는 세계'를 좋아한다. 어린이라는 조밀하고 너른 세계의 가이드에 가까운 이 책은 모르는 꽃과 나무의 이름을 알려주듯 천천히 그 세계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호명한다. 어린이 독서 교실 선생님이기도 한 김소영 작가는 친절하고 명료한 도슨트가 되어 세계의 곳곳에 위치하고 있는 친구들의 크고 작은 조각들을 소개하는데 이 조각들은 모두 다르게 반짝이고 또한 제각각 원하는 모양으로 어우러져 있다. 그 전체가 놀랍고 아름다웠다.

 어린이 날을 맞아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생각했다. 타인이라는 세계를 만날 때 조심할 것들과 지나치지 않을 것들에 대해 그리고 무수한 조각들이 맞춰지는 거대한 세계의 모양에 대해서. 또한 그 무수한 조각들 속의 내 모습도 생각해 보았다. 나 또한 다르고 반짝이는 내 모습 그대로 세상과 어우러지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어린이의 세계를 통해 지금 나의 세계를 그리고 타인의 세계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 것은 귀한 공부였다.

 소통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말이 통하면 누구나 친구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소통이라는 붐비는 교차로에서 마침내 서로의 손을 잡을 때 차이는 그저 과거의 의심이 될 뿐이다. 세상의 복판에서 친구를 만나는 경우의 수가 늘어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편견 없이 될 수 있는 관계의 이름이 친구라면 우리는 그 수를 늘림으로써 세상을 좀 더 안아줄 수도, 세상에게 안길 수도 있는 것이다.

 김현탁 감독의 영화 '아이'를 봤다. 수식 없는 간결한 제목의 영화인데 안고 있는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았다. '아이'는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 두 여성이 친구가 우정의 이야기이자 타인이 가족이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의 모양이기도 했다. 이십 대 초반의 아영은 보호종료 청년이다. 그녀는 대학의 아동학과에서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를 먹여 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한다. 삼십 대 초반의 영채는 6개월 된 아들 혁이의 싱글맘이자 서툰 엄마다. 그녀는 술집에서 일하며 아이를 키우기 위해 애쓰지만 아이도 일도 조금도 쉽지가 않다.

 아영과 영채에게 세상은 친절하지 않다. 그래서 둘 또한 서로에게 친절하기가 쉽지 않다. 내 몫의 세상이 버거운 아영과 영채가 우연히 서로에게 손을 내밀게 되는 것은 둘 사이에 놓은 아이 혁이 때문이다. 누군가로부터 버림받았던 아이 아영은 영채의 아이 혁이의 베이비시터가 된다. 아영이 스스로를 먹여 살리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일이 일로 끝나 지지가 않는다. 아이 혁이의 너머로 자신과 닮은 영채가 아영의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영채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의 아이를 돌보는 아영에게 맘이 쓰인다. 하지만 고단한 삶을 이어나가는 두 여성 아영과 영채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틈조차 없다. 서로가 서로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아영과 영채는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하루가 고장 나는 중인 세탁기처럼, 쉬이 지워지지 않는 술 냄새처럼 존재한다. 매일이 고장이고 매일이 고역이다. 그 와중에 돌봄이라는 노동은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나를 돌보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생후 6개월의 아이를 돌보는 매일의 일상 이라니. 책임감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행이겠지만 그 감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의 육아다.

영화 '아이'는 여성 노동자, 돌봄 노동, 보호종료 아동, 여성 간의 연대 같은 사회면의 키워드들을 지나치지 않는 영화다. 빤히 들여다 보고 끊임없이 스킨십을 시도한다. 왜 그런가요. 어디가 아픈가요.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요. 아영과 영채는 동년배도 아니고 취향도, 말투도 삶의 방식도 모두 다르지만 마침내 손을 잡고 어깨를 맞댄다. 타인에게 시간을 허락하고 서두르지 않고 다음을 기다리는 일을 우리는 '서로를 돌본다'라고 할 것이다. 비단 아이를 돌보는 일뿐만이 아니다. 타인의 세계를 돌보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가장 안전한 장치가 될 것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아이'의 마지막 장면은 태양이 먼지를 비추는 세상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아영과 영채 그리고 혁이의 뒷모습을 비춘다. 아영은 혁이를 안고 있고 영채는 목발에 의지해 조금씩 발을 뗀다. 이들의 상황이 크게 나아진 것이 아닌데 이상하게도 조금도 쓸쓸하지 않았다. 아영과 영채, 혁이가 걸어가는 길목마다 선물처럼 희망이 놓여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고 이들이 다시 만날 세계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부디 스스로의 반짝이는 그대로를 잃지 않기를, 타인의 곁에서 세상과 어우러지기를 말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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