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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죄 복역→예비검속… 끝없는 고통"
27일 제주4·3 희생자로 인정된 김두황 할아버지
억울한 옥살이부터 경찰영웅 만나 목숨 구하기도
"희생자 인정 기쁘지만 아직 국가의 사과 남았다"
송은범 기자 seb1119@ihalla.com
입력 : 2019. 03.27. 16:4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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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자택에서 만난 김두황(91) 할아버지는 4·3희생자 인정 소식이 기쁘면서도,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국가의 사과를 원했다. 송은범기자

"70년이 지났는데 그 사람에게 무슨 원망이 있겠습니까. 다만 이제라도 억울한 옥살이와 폭도라고 멸시 당한 세월에 대해 국가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어요."

 27일 추가 신고를 통해 제주4·3희생자로 인정된 김두황(91) 할아버지를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자택에서 만났다. 김 할아버지는 1948년 10월 마을사람의 모함으로 성산포경찰서에 연행돼 모진 고문을 받은 뒤 군사재판에서 '내란죄'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목포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한 '4·3수형생존인'이다. 김 할아버지가 받았던 군사재판은 앞서 지난 1월 17일 법원을 통해 위법성이 인정된 바 있다.

 "옥살이를 한 이후 제 인생은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마을에서 '폭도'라고 멸시를 당한 것은 물론 자식들도 연좌제로 인해 수없이 경찰에게 끌려다녀야 했어요. 그래도 나를 모함한 사람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그 사람도 고문을 견디지 못해 생각나는 이름을 말한 것 뿐이니까요. 잘못은 국가에 있습니다."

 김 할아버지는 형무소에서 출소한 뒤에도 고난을 겪어야 했다. 곧바로 터진 한국전쟁으로 인해 예비검속자로 지목돼 또 다시 성산포경찰서에 연행된 것이다. 다행히 당시 성산포경찰서장이었던 故 문형순 선생이 군 당국의 예비검속자 총살명령에 대해 "부당(不當)하므로 불이행(不履行)"한다며 예비검속자 200여명을 석방시키면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문형순 서장은 지난해 '경찰영웅'으로 선정돼 제주지방경찰청에 흉상이 건립된 인물이다.

 "목숨은 건졌지만 언제 또 잡혀갈 지 모른다는 생각에 늘 불안했습니다. 차라리 전쟁에 나가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 군대에 입대, 5년 6개월 동안 군생활을 했어요. 제대를 한 뒤에는 고향에서 '빨갱이' 딱지를 떼기 위해 마을 대소사에 모두 참가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여러 차례 4·3희생자 신고를 할 기회가 있었지만 김 할아버지는 번번이 기회를 놓쳤다. 다행히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6차 추가신고 기간에 리사무소의 도움으로 신청을 할 수 있었고, 이번에 드디어 희생자로 인정받게 됐다.

 "이제라도 희생자로 인정돼 기쁩니다. 하지만 아직 내게 남아있는 빨간줄을 지우고 싶어요. 최근 저와 같은 4·3수형생존인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현재 가족들과 4·3단체를 통해 재심이 가능 여부에 대해 알아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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