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32] 3부 오름-(91) 거문오름, 봉우리가 연이은 오름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32] 3부 오름-(91) 거문오름, 봉우리가 연이은 오름
'거문'은 아이누어, 오늘날의 언어로 풀리지 않아
  • 입력 : 2025. 06.24(화) 03:30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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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이 유사하다고 뜻도 같은 건 아니


[한라일보]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표고 456.6m, 자체높이 112m인 오름이다. 세계유산본부가 자리하고 있다. 화구는 북동쪽으로 크게 터졌다. 화구를 에워싼 등성마루는 크고 작은 봉우리로 이어지면서 기복을 이룬다.

거문오름, 서거문오름이라고도 하며 여러 개의 봉우리가 연이어 있다. 김찬수

17세기 말 탐라도를 비롯한 고전에 시련악(時連岳), 시련악(是連岳), 서거문악(西巨門岳), 서흑산(西黑山), 거문악(巨文岳), 거문악(拒文岳) 등으로 기록되었다. 이렇게 역사 기록에는 6개의 지명이 나타난다. 여기서 서거문악(西巨門岳), 서흑산(西黑山) 같이 '서(西)'라는 방위어가 들어 있는 이유는 똑같이 거문악으로 불리는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의 오름과 구분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사실상 이 오름의 지명은 거문악(拒文岳), 거문악(巨門岳), 흑산(黑山), 시련악(是連岳), 시련악(時連岳)이다.

이 지명들은 거문악(拒文岳), 거문악(巨門岳)처럼 '거문-'이라는 순우리말로 된 지명, 흑산(黑山)처럼 '검은-'이란 뜻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지명, 시련악(是連岳), 시련악(時連岳)처럼 '시련-'이라는 순우리말 지명 등 세 종류로 구분된다.

지금까지 이 오름의 지명에 대해 "'거머', '검은' 등은 '검'에서 나온 것이며, '신(神)'의 뜻을 갖는다"라는 어느 연구서를 인용한 오름 나그네라는 책에 나오는 설명이 널리 유포되어 있다. '검'이 '신(神)'의 뜻을 갖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바로 이 오름에 적용되는 건 아니다. 이 오름의 어떤 점이 신과 관련 있는지 제시해야 논의가 될 수 있는 것이지 어형이 유사하다고 해서 뜻까지 같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동음이의어가 얼마나 많은가.



'거멀창'은 깊은 동굴의 뜻


또 어떤 이는 이 오름에 있는 수직굴 거멀창을 1709년 탐라지도에 거물항(巨勿項), 제주삼읍도총지도에 흑갱(黑坑)으로 표기한 것으로 볼 때 이 지명은 '거멀창'에서 유래하며, '검은'의 뜻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동거문오름, 여러 개의 봉우리가 산맥처럼 이어졌다. 김찬수

그러나 이 주장은 '거멀'이라는 말의 어감에서나 '흑갱(黑坑)'이라는 한자 표기에서 유추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말이 '검은(黑)'의 뜻을 갖는다고 하면 난센스다. 오늘날 제주어 '거멀창'에 대한 설명이 전반적으로 군색하다. 그저 지명의 하나로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검은오름의 분화구. 환형(環形)·말굽형의 복합형으로, 정상으로부터의 깊이는 125미터. 한쪽 언덕에 수혈 동굴이 있음." 정도가 고작이다. '거멀'의 어원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만장굴은 지금의 지명을 갖기 전엔 '만쟁이거멀'이라고 불렀다. '거멀'이란 말이 '굴'에 대응하는 뜻으로 사용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거멀'은 굴을 지시하는 '구무'에 소급되고, '구무'란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고망~거멀' 등으로 분화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여기에 흔히 제주어에서 바닥을 의미하는 '~창'이 덧붙은 말이다. 따라서 거문오름의 지명이 '검은(黑)'의 뜻에서 온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시련악(是連岳), 시련악(時連岳)은 한자표기가 상이한 것으로 볼 때 '시려니' 유사음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차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려니'가 '사렝이'를 한자 차용표기한 이후 굳어진 것과 같은 이치다. 몽골고어에서 '시렝이'가 바위 또는 절벽을 지시한다. 이 오름이 유난히 바위가 많고, 깊은 함몰구가 발달하여 절벽도 많아 이런 특징을 반영한 지명일 것이다.





'거문-'은 '봉우리가 연달아 이어진'

마지막으로 '거문-'은 무슨 뜻인가? 이 말은 고대어로 '산맥', '봉우리가 연달아 이어진'의 뜻을 갖는다. 아이누어 기원이다. 등성마루가 크고 작은 봉우리로 이어지면서 기복을 보이는 특징을 반영한 지명이다. 언어사회에 따라 같은 오름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거문오름이란 지명이 여기 말고 또 있다.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있다. 표고 340m, 자체높이 115m다. 네이버지도에는 동거문오름, 동검은이오름으로 표기했다. '제주의 오름'이란 책에는 거미오름을 정명으로 표기했다.

17세기 말 탐라도 등에 방하악(防下岳), 그 이후 거문악(巨文岳), 동거문악(東巨門岳), 동거문악(東巨文岳), 동거문이악(東巨文伊岳), 지역에서는 이 외에도 주악(蛛岳)으로도 쓴다.

이 오름의 지명은 방위어 '동(東)'이 포함된 지명을 제외하면 거문악(巨文岳), 거문악(巨門岳), 방하악(防下岳), 주악(蛛岳) 등 4개다. 거문악(巨文岳), 거문악(巨門岳) 등은 선흘리의 거문오름과 똑같다. 여기에 '동(東)'이 붙은 것으로 볼 때 서거문오름이라고도 부르는 선흘리의 거문오름과 구분하기 위해서다. 쟁점은 왜 이 오름을 '거문(검은)'이라 했는가이다. 선흘리의 거문오름이 '검은'오름이 거멀창에서 왔다면 이곳 종달리의 거문오름에도 거멀창이 있어야 한다. 그런 지명도 지형도 없다. 그러므로 이 '거문' 혹은 '검은'은 거멀창에서 온 것이 아니라 다른 데서 그 연유를 찾아봐야 한다.

이 오름도 많은 봉우리가 연달아 이어졌다. 선흘리의 거문오름과 그 지명 기원이 같다. 주악(蛛岳)의 '주(蛛)'는 '거미 주'자이다. 훈가자 차자방식으로 쓴 것이다. '거미'라고 읽되 그 발음만 차용했다는 뜻이다. 방하오름이란 넓게 퍼진 오름이란 뜻이다. 방애오름, 번널오름 편에서 참조할 수 있다. 한편, 지난 회에 언급한 표선면 가시리의 감은이오름과 구좌읍 송당리의 감은이오름(가문이오름으로도 표기) 등도 같은 지명 기원이다.

거문오름은 '흙이 검어서'도 아니고, '신성한 산'이라는 뜻도 아니며, '거미를 닮아서'도 아니다. '봉우리가 연달아 이어져 산맥 같은 산'이라는 뜻이다. 간혹 '검은오름'이라고 써야 한다는 주장도 보게 되나, 이런 주장은 근거가 없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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