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지금 이 순간
  • 입력 : 2022. 10.21(금)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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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엣 원스'.

영화가 삶을 보여주는 방법에 리얼리즘 만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영화가 나타났다.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두 감독이 공동 연출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엣 원스'가 바로 그 작품이다. 이 영화는 대혼돈 그 자체다. 미국에서 빨래방을 하며 살아가는 중국인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한 영화는 쿵푸 액션과 SF, 멜로드라마와 코미디 등 영화의 장르가 만들어 놓은 모든 문을 열고 들어간다. 마치 미로에 빠진 것처럼, 라인업을 모르고 들어간 락 페스티벌에 온 것처럼 당황스럽고 불안하지만 묘한 호기심과 예기치 못한 흥분으로 짧지 않은 러닝타임인 2시간 20분여를 지그재그로 달려가는 영화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엣 원스'다.

이런 혼종 영화를 견딜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생경한 것을 못 참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의 초반 30여분은 의아함과 고통 사이의 어디쯤에 당신을 데려다 놓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얘길 하려는 거지? 내가 보고 있는 게 대체 뭐지? 나는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을까? 고진감래. 그 불편함과 낯섦을 조금만 더 참기를. 이 영화가 다짜고짜 탑승시키는 놀이 기구들의 현란하고 아찔한 체험이 끝나고 나면 거짓말처럼 세계 평화와 가족의 사랑과 내 삶의 의미라는 고색창연하지만 귀하디 귀한 메시지가 동시에 눈앞에 펼쳐진다. 아니 그런 게 실존한다고? 마침내 엔딩에 이르면 스크린을 보는 눈에서 눈물과 꿀이 같이 떨어지는 진귀한 경험을 선사하는 영화. 못 믿을 수 있다. 하지만 참는 자와 믿는 자에게는 늘 복이 있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엣 원스'는 긴 제목처럼 복잡한 작품이다. 멀티버스를 다루는 영화의 성격답게 이 영화는 모든 것의 교차로로 만들어진 거대한 세계다. 과거의 나와 다른 세계의 나,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나와 나를 모르는 나가 영화의 모든 곳에서, 동시에 출몰한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데 나의 밖에도 내가 무수히 많다는 이 영화의 설정은 주인공 에블린을 망연자실하게 만든다. 하루하루도 버거운데 굳이 이렇게까지 모든 것이 모든 곳에서 충돌하는 상황을 맞닥뜨려야 한다고? 갑자기? 남편은 이혼 서류를 내밀고 노령의 아버지는 몸이 아프고 동성애자인 딸과는 도무지 소통이 어려운 데다 국세청의 직원은 영어도 잘 못하는 에블린을 몰아세운다. 에블린도 잘 한 건 없지만 그녀에게 남은 건 너무 볼 품이 없다. 야속하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에블린은 당신이 세계를 구원할 것이라는 명을 받는다. 누구한테? 이혼 서류를 내민 남편한테. 그리고 최강의 적은 사이가 좋지 않은 딸의 몸속에 들어있다. 오 마이 갓.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엣 원스'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도망치지 않는 에블린의 사생결단으로 달려 나간다. 물론 에블린을 연기한 배우가 양자경이어서 가능했던 결과다. 무협 액션과 가족 드라마라는 양날의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배우인 양자경은 놀랍도록 섬세하고 담대하게 이 멀티버스 세계관을 익혀 나간다. 심지어 완전히 익힌 뒤 아름답게 배열한다. 그러니까 이 무림의 고수에게는 그 영역이 얼마나 넓어지든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대나무 숲을 유유히 날던 양자경은 온갖 세계의 문을 넘나들면서도 결코 자신이 맡은 캐릭터와 자신을 보는 관객들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끔 지치거나 문득 혼란스러울 때가 찾아올 수 있다. 그럴 땐 무조건 양자경을 믿어라.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엣 원스'는 모든 것의 시작이 자신임을 믿는 영화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듯한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옛말처럼 나를 깨닫고 가족을 믿고 세상의 평화를 가지고 오는 놀랍도록 고전적인 메시지의 영화다. 이 영화 속 온갖 장르의 혼재와 멀티버스의 용어들과 시공간을 오가는 시각적 연출은 사실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해가 불가능할 만큼 어려운 것은 아니다. 언제나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은 결국 나라는 한 사람이고 여전히 알고 싶은 것은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화려한 장식들을 정신없이 붙이고 천천히 떼어내며 말한다. 나와 타인에게 다정하라고, 모든 날, 모든 순간 당신이 행했던 그 사소한 다정들이 지금의 당신을 구할 거라고 말이다. 온 우주에서 날아온 온갖 장식품이 다 걸린 듯한 거대하고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이 영화는 결국 모두의 크리스마스 소원처럼 선명하고 거대한 희망을 남기는 영화다.

우리의 삶에는 온갖 장르가 다 뒤섞여 있다. 어떤 영화도 우리의 삶만큼 복잡하지는 않을 것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엣 원스'는 영화가 삶을 그려내는 가장 거대한 팔레트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모든 발색이 가능한 동시에 모든 색을 더한 끝인 블랙홀에서 결국 작디작은 구멍을 통과하는 한 줄기 희망의 색을 남겨 놓는 영화. 그 색이 무엇인지는 아마 이 영화의 마지막을 마주한 관객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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