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볼 빨간 사춘기

[영화觀] 볼 빨간 사춘기
  • 입력 : 2022. 04.22(금)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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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메이의 새빨간 비밀'

어린 시절에는 엄마와 평생을 함께 살 줄 알았다. 엄마의 품 안에서 나는 나로 시작됐고 탯줄이라는 물리적 끈이 사라진 뒤에도 긴 시간 나는 엄마 쪽에서 시작된 끈을 쥐고 살고 있다. 늘 그 끈을 꼭 쥐고 있었다. 때로는 내가 당겼을 때도 있고 엄마에게 당겨진 적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 끈을 놓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금은 그 끈이 손금의 어느 부분이 됐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끈이 가장 팽팽했던 때는 나의 사춘기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엄마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 의아하고 엄마에게 털어놓기 힘든 감정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던 시절,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자식들은 절대적 존재였던 엄마에게 상대적 평가를 시작했던 것 같다. 엄마를 밀어내야 나의 세상이 넓어질 것 같다는 생각으로 분주했고 어느덧 엄마보다 친구가 더 가깝게 느껴지던 그 시절, '볼 빨간 사춘기'를 다룬 애니메이션 '메이의 새빨간 비밀'에서 그런 나와 엄마의 모습을 발견했다.

OTT채널인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흥분하면 붉은 털의 거대한 레서판다로 변하는 13살 소녀 메이의 이야기다. 학교에서는 모범생, 집에서는 사원을 운영하는 엄마를 착실히 돕는 착하고 성실한 딸 메이는 엄마는 모르게 절친들과 함께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는 소녀이기도 하다. 착하고 모범적이어야 엄마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일념 하에 모범생 딸과 열혈 덕후라는 평범한 이중생활을 이어가던 메이는 어느 날 감정이 격해지자 생각도 못한 존재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메이의 놀라운 이중생활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바오'라는 작품을 통해 오스카 단편 애니메이션 상을 수상한 중국계 캐나다인 도미 시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인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디즈니-픽사의 장기인 성장 드라마와 가족 영화의 장점들은 물론이고 매력적인 캐릭터와 다채로운 색감의 영상미로 가득한 수작이다. 무엇보다 '인사이드 아웃'과 '소울'에 이어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디즈니-픽사 특유의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들려주는 작품으로 어린이는 물론 성인 관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13살 소녀 메이의 내면에서 깨어나 천지를 호령하는 또 다른 메이인 레서판다. 모계의 비밀이었던 이 야수의 정체가 엄마에게 발각되자 엄마는 메이를 이전의 상태로 돌려놓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이 놀랍도록 거대한 존재는 메이와 메이의 친구들에게는 특별하고 매력적인 스타로 자리하기 시작한다. 레서판다가 자신의 안에서 깨어난 후 메이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벗어나 자신의 순수한 욕망을 바라보고 느끼고 즐기기 시작한다. 갑자기 나타난 것 같은 내 안의 야수는 사실 억압됐거나 자라지 못했던 진짜 메이의 모습이기도 했던 것이다.

사춘기는 단순히 방 문을 닫고 심지어 잠근 뒤 엄마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시기는 아닐 것이다. 그 닫힌 문 안에서 우리는 모든 걸 공유해왔던 엄마에게도 보여주기 난감한 감정의 새싹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그리고 그 논쟁은 당연히 엄마는 몰라야 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감정들 앞에서 이게 맞는 것인지,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은 아닌지 머리를 쥐어뜯었던 밤의 시간 동안 엄마에게 낯선 내가 되는 것이 너무 어렵고 힘든 일이었기에 우리는 숨을 수밖에 없었다.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엄마 역시 그때 처음으로 느낀 서운함 앞에서 어렵고 힘들었을 것이다. 메이와 메이의 엄마 또한 그렇게 달라진 서로의 관계 앞에서 당황하게 된다. 밀어내기도 도망치기도 하는 이 관계는 당연하게도 메이의 엄마와 메이의 할머니 또한 겪었던 일이기도 하다.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익숙한 엄마와 자식의 관계는 서로를 실망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앞에서 무력하기만 하다. 엄마를 실망시키는 일이 마치 배신처럼 느껴졌던 모든 자식들은 그렇게 진짜 나와 함께 성장하는 일을 주저했던 것이다.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다'는 노래 가사처럼 우리 안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의 무수한 조각들이 자리한다. 그 수가 몇 개인지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고 엄마도 모른다. 그 조각들은 나를 혹은 상대를 찌르기도 하고 혹은 비어있던 나의 부분을 완성시키기도 한다. 부모와 자식은 그렇게 서로를 밀어내기도 당기기도 하면서 함께 살아간다. 극과 극을 향해 달릴지라도 함께 존재하는 것, 서로의 다른 조각들을 오랜 시간 맞춰가며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야말로 이 금쪽같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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