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없는 제주4·3 수형행불인 첫 무죄 선고

시신 없는 제주4·3 수형행불인 첫 무죄 선고
재판부, 故오형률씨 10명 재심 공판서 무죄 선고
"내란죄 등 입증할 증거 없어 실추된 명예회복 하길"
  • 입력 : 2021. 01.21(목) 11:48
  • 이상민기자 has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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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생존수형인에 이어 제주 4·3당시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행방불명된 피해자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21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부장판사 장찬수)는 제주 4·3당시 내란 실행과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군사재판을 받고 실형을 산 故오형률씨 故김경행씨, 故서용호씨, 故김원갑씨, 故이학수씨, 故양두창씨, 故전종식씨, 故문희직씨, 故진창효씨, 故이기하씨 등 4·3행불인 10명에 대한 재심 첫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어 검찰이 무죄를 구형했다"며 무죄 선고를 이유를 밝혔다.

이어 "국가로서 완전한 정체성을 갖지 못한 시기에 극심한 이념 대립 속에 피고인들은 목숨마저 희생돼 됐고 가족들은 연좌제의 굴레에 갖혀 살아왔다"면서 "이번 판결로 피고인들은 저승에서라도 오른쪽 왼쪽 따지지 않고 마음 편하게 둘러 앉아 정을 나누는 날이 되길,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재판부는 이날 이례적으로 검찰의 구형 직후 바로 선고 공판을 진행했다. 유족 대부분이 고령인 점을 감안해 신속히 결론을 내리겠다는 재판부의 의지로 풀이된다.

검찰은 무죄 구형 전 최종의견에서 "피고인들 공소사실은 국방경비법과 내란죄를 저질렀다는 것이지만, 이를 입증할 아무런 증거 없다"며 "이번 재판으로 피고인들의 생사 여부도 모른채 70년을 기다린 재심 청구인들이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고,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4·3행불인에 대한 무죄 선고는 제주 4·3 70여년 역사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에는 김두황(93)씨 등 생존수형인 8명이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날 무죄 선고에 법정을 가득 메운 유족들은 박수를 쳤고 일부는 눈물을 훔쳤다.

故오형률씨 부인 현경하(103)씨는 "남편 없이 삼남매를 어렵게 키워왔다"며 "남편이 너무 생각난다"고 눈물을 터뜨렸다.

한편 재판부는 앞서 지난해 11월30일 현씨 등 행불인 유족 10명이 제기한 재심 청구를 수용했다. 재심 개시를 가를 가장 주요한 쟁점은 4·3행불인이 법적으로 사망했는지를 입증할 수 있는 지였다. 형사소송법상 재심 청구는 유죄를 선고 받고 형이 확정된 자와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자가 사망했을 땐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매 등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4·3행불인이 이미 사망했다고 판단했다. 당시 재판부는 "재심 청구 대상이 된 행불인 10명이 지금까지 모두 살아있다고 가정한다면 가장 어린 행불인의 나이는 86세, 가장 연로한 행불인의 나이가 106세"라며 "당시 평균 수명이 현재의 평균 수명에 크게 못 미쳤던 점, 처우가 매우 좋지 않은 수감자 신분 상태에서 한국전쟁 발발 직후 생존하기 힘들 것으로 보있는 점들을 비춰보면 행불인들이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현재 재심 절차를 밟고 있는 4·3행불인 피해자는 330여명으로 이날 재판부의 무죄 선고가 이들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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