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포스트 코로나19] (2)감염병 관리 대책

[제주 포스트 코로나19] (2)감염병 관리 대책
'메르스 교훈'에도… 의료 인력·장비 확보 갈길 멀었다
  • 입력 : 2020. 04.28(화) 00:00
  • 이상민 기자 hasm@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코로나19 확진자가 제주대학교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한라일보DB

정부, 메르스 사태 이후 방역 전문가 채용하기로…
대책 발표 4년 지났지만 도내 방역직 공무원 '0'
역학조사관도 일부만 배치
음압 병상·음압 구급차 등 환자 수용·이송 시설 한계
감염병 전문병원 대안에도 국회 예결위서 예산 삭감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우리나라는 감염병 대응 체계를 새롭게 개편했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차관급으로 격상한 것을 비롯해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에 음압병상 설치를 의무화하고, 지역별로 감염병관리지원단과 방역직 공무원을 둘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5년 뒤 맞은 코로나19 사태에서 우리나라 감염병 대응 체계는 다시 한계를 드러냈다. 메르스 사태 후 법·제도 정비가 뒤따랐지만 대규모 감염 사태에 대비한 의료 인력과 장비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도만 정비하면 뭐하나=정부가 메르스 사태 이후 내놓은 감염병 관리 대책 중 하나가 방역 전문가 채용이다. 인사혁신처는 지난 2016년 공무원임용령을 개정해 보건 직렬 속에 방역 직류를 신설했다. 그동안 방역 업무를 담당해 온 보건직 공무원들이 잦은 보직 이동에 따른 전문성 부족으로 감염병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런 대책을 만들었다. 방역 직류 공무원 선발은 2017년부터 시작됐다.

5급 방역 직류 공무원은 2차 필수 과목으로 보건행정학, 역학, 전염병관리 시험을 치르고 보건통계학, 예방의학, 환경보건학, 미생물학 가운데 한 과목을 선택과목으로 치러 통과해야 한다. 7급 공채의 2차 필수과목은 미생물학, 보건학, 보건행정학, 역학이고, 9급 공채의 2차 필수과목은 공중보건, 생물학개론 등이다. 방역 직류 공무원은 감염병 유입이나 발생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 국가 감염병 지정병원 관리, 감염병 대응 매뉴얼 개발 등의 업무를 전담한다.

제주대학교병원 음압 병상 입구가 통제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제주도에는 방역직 공무원이 단 한 명도 없다. 도 보건담당 공무원은 "공무원 선발은 인사부서가 담당하기 때문에 왜 제주도에 방역직 공무원이 없는 지에 대해선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도 인사부서 담당자는 '방역 직류 공무원을 선발하려고 했지만 그동안 지원자가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선발할 계획이 없었던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현재로선 파악이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제주도가 확보한 역학조사관 규모도 정부의 생각과는 거리가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지난 2월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각 시·군·구 보건소마다 한 명씩 조사관이 배치돼 평상시에도 감염원을 파악하고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해야 이런 감염병이 유행했을 때 역량을 가지고 조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27일 제주도에 따르면 도내에서 활동하는 역학조사관은 6명이다. 이중 공중보건의 1명을 포함한 3명이 제주도 소속 공무원이고, 1명은 보건소 소속, 나머지 2명은 민간 역학조사관이라고 제주도는 설명했다.

질병관리본부의 생각대로라면 도내 모든 6개 보건소에 역학조사관이 배치돼야 하지만 1곳을 제외한 5곳에는 역학조사관이 없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2월21일 비상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제주도에 코로나19 역학조사관 추가 지원을 (정부에) 건의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당시에는 전국적으로도 역학조사관이 모자라 추가 지원을 받지 못했다.

도 관계자는 "제주도는 지자체 규모에 따른 법정 역학조사관 확보 기준(2명)을 충족한 상태"라며 "역학조사관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인력을 추가 확보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내 대규모 감염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는 도내 공중보건의 등으로 팀을 꾸려 역학조사에 나서기로 계획을 세웠다"고 덧붙였다.

배종면 감염병관리지원단장이 지난 2월 도내 국립병원 3곳에 대한 소개 명령 방침을 발표하는 모습.

▶부랴부랴 국가지정 음압병상 확충="제주도는 의료자원이 한정된 곳으로, 도민을 책임지는 수준을 벗어나 코로나19가 확산하게 되면 환자를 옮길 수도 없고 큰일이 난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지난 26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황금 연휴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느슨해진 '사회적 거리두기' 를 경고하려고 한 말이었지만, 이 인터뷰를 통해 제주 의료 자원의 한계가 드러났다. 김 차관 발언대로 제주는 지리적 여건으로 지역 내에 감염병이 대거 확산할 경우 타 지역으로 환자를 이송하기 어려워 미리 음압병상 등 감염병 전문 의료 인프라를 적정한 수준으로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제주도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으로 제주에는 4곳 의료기관에 17개의 음압병상이 있었다. 음압병상은 외부보다 공기 압력이 낮아 병실 내 오염된 공기가 밖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며 자체적으로 공기를 정화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17개 음압병상 중 국가지정 음압병상(8실·9병상)은 제주대학교병원에만 있다. 국가지정 음압병상 운영비는 국가가, 나머지 음압병상의 운영비는 각 의료기관이 부담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제주도는 음압병상 17개만으로는 코로나19 대규모 감염 사태에 적절히 대처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지난 2월 말 3곳 국·공립병원에 코로나19 환자 전용병상을 확보할 것을 지시하는 소개(疏開) 명령을 내렸다. 이후 3월2일 370병상이 코로나19환자 전용병상으로 전환됐다.일반 병실을 비워 코로나19전용 병상을 확보하는 방식은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소개 명령 장기화로 일반 병상이 모자라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일반 환자들이 제때 입원 치료를 못받는 사례가 나타났다.

출산을 한 임산부는 분만 대기실에서 하염없이 병실이 날 때까지 기다리다 이튿날 집에 돌아가야 했고, 수술을 앞둔 일부 환자가 응급실에서 대기하는 사례도 빈번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정부는 이런 임기응변식 대처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뒤늦게 지난 14일 국가지정 음압 병상 운영에 참여할 의료기관을 추가 모집했다. 정부 스스로 국가지정 음압 병상이 부족했다고 인정한 셈이다.

감염병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할 음압 구급차도 턱없이 모자라다. 음압구급차는 병원체 전파를 차단하기 위해 제작된 특수 차량으로 지난 3월말까지만 해도 도내에는 1대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도내 대부분 코로나19 의심 환자는 보건소 또는 119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됐다.

차량 운용 과정도 허술했다. 코로나 사태 초기만하더라도 1대 뿐인 음압 구급차는 감염병 환자를 가장 먼저 받는 국가지정 의료기관인 제주대학병원이 아니라 제주한라병원에 배치됐었다. 이미 도는 지난해 감사원으로부터 음압구급차 배치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받았지만 계속 방치하다 지난 2월6일에야 부랴부랴 제주대학병원으로 음압 구급차를 재배치했다. 또 도는 지난 4월6일 음압 구급차를 추가 확보했지만 이마저도 1대에 불과했다.

▶감염병 전문병원 언제쯤=대규모 감염 사태에선 감염병 전문병원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의료계는 입을 모은다. 이 병원은 신종 감염병 등이 확산할 때 권역 내 환자를 일시 격리·치료를 하는 전문 의료기관이다. 평시에는 결핵 등 호흡기환자 등의 입원 치료와 권역 내 감염병 대응능력 교육·연구 기능을 한다.

질병관리본부는 2016년 인천, 중부, 영남, 호남, 제주 등 5개 권역에 50병상 이상의 감염병 전문병원이 필요하다는 용역보고서를 발표했다. 용역을 토대로 정부는 2017년 조선대학 병원을 호남권역 감염병 전문병원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후 추가 지정된 병원은 없다.

정부는 코로나 19사태가 터지자 뒤늦게 지난 14일 감염병 전문병원을 추가 공모를 시작했다. 그러나 제주와 인천 권역은 공모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부는 중부권과 영남권에서 각각 1곳씩 지정한다.

당초 정부는 제주 권역도 공모 대상에 올려 예산을 반영했었다. 제주 권역 예산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하며 기대감을 높였지만 예결위에서 모두 삭감됐다.

도 관계자는 "올해 공모에서는 빠졌지만 제주 권역 감염병 전문병원 예산 300여억원을 내년도 예산에 반영하기로 질병관리본부와 이미 합의했다"면서 "2022년부터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감염병 전문병원 운영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도 미리 파악해야 한다. 김상길 서귀포의료원장은 "평상시 감염병 전문병원은 호흡기 환자 치료 또는 연구 기관으로 활용한다는 게 정부의 방침인데 이런 병원 운영 방식은 재정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무턱대고 운영했다간 혈세만 낭비할 게 뻔하기 때문에 운영의 묘를 살릴 방법을 미리 구상해야 한다"고 전했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5520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