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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전 4‧3 수집 자료 출처 파악 증거력 확보
[4‧3평화재단 미국 현지조사팀 자료 입수내용·의미]
미군 지휘 아래 한국 군경·우익단체 무차별 학살 배경
‘공산주의자들’ 누명 씌우고 불법적 재판·가혹행위 용인
“공산주의자 통상 법률적 방법 다뤄선 안돼” 인식 공감
조상윤 기자 sycho@ihalla.com
입력 : 2020. 01.12. 00: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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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미국자료를 검색하는 모습

제주 4‧3과 관련 미국의 책임이 있는 부분에 대한 현지 자료들이 추가로 수집되고, 과거 수집된 자료들에 대한 출처 등도 확인되면서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의 조사연구실(실장 양정심) 주도로 지난해 미국자료현지조사팀이 6개월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을 중심으로 4‧3 관련 자료를 조사한 결과 관련 기록 3만 8000여매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연합군최고사령부(Supreme Commander for the Allied Powers, SCAP) 자료에 따르면, 미군정의 최고책임자인 하지(Hodge) 중장은 남한의 단독선거를 앞둔 1948년 3월 3일 UN임시위원단과 덕수궁에서 가진 회의에서 ‘정치범(political prisoner)’에 대한 정의를 놓고 격론을 벌였던 것으로 파악되면서 당시 미군정 등의 분위기를 알 수 있게 됐다.

UN임시위원단은 남한의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찬성도 반대도 할 수 있으니 그들을 ‘정치범’으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러나 하지는 “선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고 재산을 파괴하는 자들을 어떻게 정치범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동기는 정치적일지 모르나 범죄자일 뿐이다”라며 강력히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임시위원단은 “우익세력이 그런 행동을 해도 마찬가지냐”고 따졌고 하지는 “그렇다”고 답했다. ‘정치범’과 ‘범죄자’는 대응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의 이 같은 답변은 5‧10선거를 반대한 제주지역에서 미군의 지휘 아래 한국 군경과 우익단체에 의한 무차별 학살이 저질러지게 된 배경을 설명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조사연구팀은 밝혔다.

남한에 진주했던 24군단의 상위기관인 미 극동군사령부(Far East Command, 일명 맥아더사령부) 문서에 의하면 4·3봉기가 일어나고 한 달가량 지난 1948년 5월 제주에는 미군 70명이 주둔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48년 7월 2일자 미 국무부 문서에는 하지의 정치고문 제이콥스(Joseph E. Jacobs)는 제주의 최고지휘관 브라운(Rothell H. Brown)대령의 보고를 바탕으로 제주도민의 80%가 공산주의자와 관계돼 있거나 공포 때문에 그들과 협조하고 있다고 국무부에 보고한 내용도 담겨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한미군사고문단장 로버츠(Roberts) 공한철 등 미군 보고서에는 제주도에서 소위 초토화작전을 의미하는 ‘싹쓸이(cleaning-up)’ 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극동군사령부 문서에 의하면, 로버츠 준장은 1949년 1월 28일 “공산주의자들을 싹쓸이하기 위해 제주에 1개 대대를 추가 파병하겠다”는 채병덕 참모총장의 서한에 대해 ‘최고 수준의 사고(top level thinking)’고 극찬한 것으로 조사팀은 확인했다.

극동군사령부 정보요약 보고에서도 우익세력의 행위에 대한 하지의 답변과는 달리 미군은 1949년 2월 20일 제주에서 민보단이 76명의 주민들을 창으로 찔러 살해했을 때 “그들에게 ‘주의(brought to the attention)’를 줄 필요가 있다”는 정도로 사건을 마무리 짓고 있다고 조사팀은 전했다.

1949년 7월 21일자 극동군사령부 문서에는 유재흥 대령의 귀순공작과 사면정책에 의해 하산한 사람들도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약 2천 명의 공산주의자들(Communists)에 대한 재판이 제주도에서 최근 진행되었다. 350명의 사람들이 사형을, 약 1천 650명이 20년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 4‧3 군사재판 수형자중 일부가 지난해 우리 법원에 의해 무죄나 다름없는 공소기각과 국가보상판결을 받은 것과 비교하면, 당시 미군은 ‘공산주의자들’이란 누명을 씌우고 불법적인 재판과 가혹행위를 가해도 용인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조사팀은 강조했다.

미군 최고수뇌부의 이런 인식은 “공산주의자는 통상의 법률적 방법으로 다뤄선 안 된다”던 이승만의 인식(1948년 5월 15일자 극동군사령부 문서)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이승만은 극동군사령부 정보국 담당자와의 면담에서도 이를 피력했다고 조사팀은 덧붙였다.

미국자료 조사는 2001년 4·3위원회가 실시한 이후 18년 만에 재개된 것이다. 그때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출간된 위원회의 미국자료집은 NARA의 분류체계에 따른 출처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증거자료로서의 가치가 반감됐다. 하지만 이번 조사를 통해 해당 문서들의 출처를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증거력을 되살린 것은 큰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아울러 2001년에는 주한미군정청·주한미군 등 남한에 진주했던 미군정·미군 문서를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졌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미 극동군사령부, 연합군최고사령부, 국무부 등 상위기관의 문서들을 중점적으로 조사·수집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편 미 육군정보참모부 문서에는 비밀해제가 안된 제주 관련 파일들도 파악돼 비밀해제를 신청했지만 조사팀의 귀국 때까지 회신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NARA는 정보공개법에 따라 30년이 지난 공문서들은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방대한 문서들이기에 인력의 부족이나 혹은 정치적 이유 등으로 비밀해제가 되지 않은 문서들도 많아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로 남게 됐다.

한국사학자 박찬식 박사는 “비밀자료 획득은 유보됐지만 새로운 자료가 많이 확보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특히 원전 출처를 정확히 확인했고, 원전을 모두 스캔함으로써 연구자들과 일반인들에게 디지털아카이브로 제공할 수 있게 됐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평했다.

4·3평화재단은 올 연말에 이번 수집자료와 이전에 입수한 자료 가운데 출처가 불분명한 자료들을 정리해서 ‘4‧3 미국자료집’을 편찬할 예정이다.

1948년 7월 “제주도민의 80%가 공산주의와 관계되어 있다”는 식으로 보고된 미 국무부 문서



1949년 사면정책에 의해 하산한 2천명을 ‘공산주의자들’로 몰아세워 사형 350명 등 중형을 선고했다고 기록한 미 극동군사령부 문서



1948년 5월 “공산주의자는 통상의 법률적 방법으로 다뤄선 안된다”는 이승만의 인식을 기록한 미 극동군사령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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