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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작가의 詩(시)로 읽는 4·3] (38)완벽한 상실(1)-김병택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9. 12.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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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면 교래리 한 초가집

잇단 총성이 뒤뜰의 대밭을 흔들었다

9연대의 계획에 따라 이 땅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모두 그의 가족이었다



증조할머니는

총에 맞아 숨져가면서도

담요에 싼 손자를 급히 대밭으로 던졌다

덕분에 목숨을 부지했던 그는

불구의 몸으로 평생을 살았다

오른팔을 구부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목발을 짚고 걸어야 했다



게다가, 그는 거처하던 과수원 판잣집의 화재로

생을 마감했다

참으로 가혹한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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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1월 중순께부터 1949년 2월까지 약 4개월간 진압군은 중산간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으로 살상하는 강경진압작전이 전개됐다. 진압군은 중산간마을 방화에 앞서 주민들에게 소개령(疎開令)을 내려 해변마을로 내려오도록 했다. 그러나 일부 마을에는 소개령이 전달되지 않았고, 혹은 채 전달되기 전에 진압군이 들이닥쳐 방화와 함께 총격을 가하는 바람에 남녀노소 구별없이 집단희생을 당했다. 미군 비밀보고서에는 "9연대가 마을주민들에 대한 대량학살계획을 채택했다"거나 "2연대는 신분과 무기소지 여부에 관계없이 폭도지역에서 발견된 모든 사람을 사살하는 가혹한 작전을 벌였다"고 기록돼 있다.

교래리(橋來里)는 예로부터 다리(橋)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진다. 700여 년 전 화전민들에 의해 설촌된 마을이다. 고려시대부터 목마장이 설치되어 준마(駿馬)를 길러내는 지역으로, 왕에게 말을 진상했을 정도로 마장(馬場)이 발달했던 지역이다. 웃도리, 알도리로 이루어져 약 100여 호의 주민이 살았던 중산간 오지인 이곳에는 초토화작전의 초기부터 엄청난 피해를 당했다. 1948년 11월 13일(음력 10월 13일) 새벽 5시께, 군인들이 교래리를 포위한 가운데 집집마다 들이닥쳐 다짜고짜 불을 붙이며 총을 쏘기 시작했다. 잠에서 깨어나 다급히 밖으로 뛰어나오던 주민들이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날이 밝아 총성이 멎었을 때 100여 호 모여 살던 교래리는 이미 잿더미로 변했다. 주민들은 인근 야산으로 도피생활을 하게 된다. 그들은 느닷없이 들이닥쳐 무조건 불을 지르는 토벌대의 행태에 놀라기도 했지만 가을걷이한 곡식과 우마(牛馬)를 그냥 둘 수가 없어서 '며칠만 버티면 괜찮겠지' 생각하며 간단한 생활집기를 걸머메고 야산의 동굴이나 궤 혹은 움막을 짓고 피신생황을 했다.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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