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후 작가의 詩(시)로 읽는 4·3] (37) 곤밥 한 그릇 - 김은숙

[김관후 작가의 詩(시)로 읽는 4·3] (37) 곤밥 한 그릇 - 김은숙
  • 입력 : 2019. 12.05(목)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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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오라동 어우눌에, 용담동 돔박웃홈에

서귀포시 서귀동 소남머리에, 서호동 시오름 주둔소에

북제주군 조천읍 묵시물굴에 낙선동에도 와흘굴, 도툴굴이며 너븐숭이 애기무덤에도

북제주군 에월읍 빌레못굴에 자리왓에 머흘왓성에도

남제주군 안덕면 무등이왓에

표선면 한모살, 성산면 우뭇개동산에

남제주군 남원읍 송령이골이며 대정읍 사만질앞밭에



한 맺힌 제주 곳곳에

용눈이오름 다랑쉬오름 같은

여전히 잠들지 못하고 바람울음으로 떠도는

저 수많은 원혼들 앞에

따뜻한 곤밥 한 그릇

지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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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밥 한 그롯'. 배가 고파 허우적거리던 어린 시절, 매일 보리밥만 먹던 소년은 '곤밥 한 그롯'을 먹기 위하여 친척집 제삿날만 기다린다. 자정이 가까워야 겨우 눈을 부비고 일어나 맛보는 제사 음식, 그리고 '곤밥 한 그릇'. 상상만 해도 꿀맛이다. 그 곤밥을 수많은 4·3혼들에게 올리지를 못했다. 너무 어려워서다.

제주4·3 71주기를 맞아 당시 무력진압에 앞장섰던 군 당국과 경찰이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당시 강경 진압 결정을 내리는 등 결정적 역할을 한 미국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4·3 관련 단체들은 지난해 4월 미국의 책임 인정과 사과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미 대사관에 전달했으나 반응은 없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국방부와 경찰이 공식 사과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국방부와 경찰이 이제 4·3원혼들의 제사상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함께 곤밥을 먹을 일만 남았다. 그렇지만 미국은 곤밥을 싫어하는 것일까? 국방부는 4·3특별법의 정신을 존중하며 진압 과정에서 도민들이 희생된 데 대해 깊은 유감과 애도를 표하며, 진상규명을 위한 정부의 노력에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도 경찰청장이 처음으로 4·3추념행사에 참석해 당시 경찰이 저지른 행위를 반성한다고 밝혔다. 국방부와 경찰은 도민과 함께 원혼들의 제사상 앞에서 함께 곤밥을 먹기를 원하고 있다. 그렇지만 의문이 생긴다. 국방부가 4·3사건에 투입됐다가 포상을 받은 군인들의 포상 취소는 검토나 하고 있는지, 사뭇 걱정이 되는 부분이다. 4·3 참극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고 미군정이 종료된 뒤에도 미국은 미 군사고문단을 남한에 잔류시켜 한국군과 경찰을 실질적으로 지휘했다. 이에 대한 본격적인 진상 규명 작업은 여태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인은 곤밥을 싫어하는 모양이다.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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