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다와 문학] (28) 나기철 시 '제주해협'

[제주바다와 문학] (28) 나기철 시 '제주해협'
"제주 바다 보인다, 청천강은 없다"
  • 입력 : 2019. 11.08(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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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대한 나기철 시인의 첫 기억이 배인 제주항. 피난민으로 제주에 정착한 시인에게 바다는 새삼 분단의 현실을 확인하는 존재다.

첫 시집 실린 '청천강' 연작
고향가는 길 끊긴 분단 현실
"흘러왔느니 또 흘러가리라"


제주굿판을 훑어온 문무병 시인은 그를 일컬어 '입향 시조 1세대'로 칭했다. 20년 전인 1999년 나온 나기철 시집 '남양여인숙' 해설에 들어있는 표현이다.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난 나기철 시인은 6·25한국전쟁 이후 제주에 왔다. 널리 알려진 그의 '청천강' 연작에 가족사가 배어있고 그를 통해 피난민으로 제주에 정착하게 된 연유를 짐작할 수 있다.

'평안남도 안주군 신안주면/ 원흥리/ 어머니는/ 시계포 주인 아버지/ 육남매 중 고명딸// 철거덕거리며/ 기차는 지나갔다// 비가 내린다 30년 동안 캄캄하게/ 한라산이 보인다/ 묘향산은 보이지 않는다/ 제주바다 보인다/ 청천강은/ 보이지 않는다'('우기(雨期)-청천강·1' 중에서)

나 시인의 첫 시집 '섬들의 오랜 꿈'(1992)에 실린 '청천강' 연작에서 그의 바다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의 초기작에 보이는 바다는 뭍과 단절을 낳는 그것이면서도 여느 제주 시인과는 다르다. 해녀, 이여도, 고기잡이 같은 이미지 대신에 어머니가 떠나온 고향, 그의 외가가 있었을 먼 땅에 가닿을 수 없는 분단의 현실이 파도친다.

'청천강' 연작은 바다로 흘러흘러 다다른 시인의 제주 입도기가 한 편의 서사시처럼 펼쳐진다. '제주해협(濟州海峽)-청천강·5'의 첫 구절을 보자. '부산에서는 더는 살 수가 없었다. 신성동산(山) 어둠 속에서 내려다본 불빛들은 수없이 우리를 빨아 갔다. 아래로 내려왔다. 저녁 때 도라지호(號) 끝에 매달렸다. 땅은 우리를 땅 밖으로 밀어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섬으로 가겠느냐'고 묻는다. 살기 위해 수평선을 넘었고 다시 새로운 생을 꾸리기 위해 그들은 배에 올랐다. '아침이 되니 큰 섬이 앞에 있었고 누이와 나는 난간에 앉아 바다와 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주에 대한 시인의 기억은 제주항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처음 와 닿던 가랑비에 젖는 내 유년의 제주항, 카페리호 터미널로 바뀐.'('제주항')곳이다. 제주항은 '제주는 나를 자꾸/ 밀어 보낸다/제주항으로// 카페리호 터미널/ 넓고 높은 대합실/ 텅 비어 있다'('제주항·2')며 두 번째 시집 '남양여인숙'에도 나타난다. 간간이 등장하는 별도봉도 제주항이 내려다보이는 공간일 터, 시인은 그곳에서 고향 갈 길 끊긴 심정을 노래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분단의 역사가 땅 바깥으로 밀려난 시인을 바다로, 섬으로 이끌었다. 섬에서도 시인은 산을 그리워했다. 섬에서 삼천 리 떨어져있는 청천강 너머 묘향산은 그에게 '언제나 내 가슴에 젖어 울던 산'이다. 그래서일까. '흘러왔으니 또 흘러가야 하리'라며 '없는 고향은 생각해서 무엇하리/ 이 산천 어디메나 다 내 고향인데'라고 애써 위안하는 '성산아리랑-청천강·10'이 구슬프게 들린다.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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