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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 장편 연재/갈바람 광시곡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6)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입력 : 2019. 10.31. 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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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 작/고재만 그림

12-4. 괸당들이 사는 법



"자네가 화교의 설움을 알 리가 없지. 어렸을 적부터 우린 가까이 해선 안 되는 더러운 인종 취급을 받았어. 냄새 난다고 배척하고 배달하는 사람을 거지처럼 무시하고 외상값은 갚지 않아도 된다는 사고방식에 많은 상처를 받았지."




소리를 듣고 예의 웨이터가 들어왔다. 정소영이 다급하게 물었다.

"김 군, 무슨 일이야?"

"왕 사장님이 약에 취해서 파트너 마음에 안 든다고 칼을... "

말하는 도중에 금산이 버럭 소리쳤다.

"야 이 새꺄. 기자님 앞에서 너 지금 무슨 소리야? 이 자식들 똑바로 못해?"

웨이터는 용찬과 금산을 번갈아 보더니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합니다'란 말을 반복했다.

금산은 양복 주머니에서 오만 원 권 돈다발을 꺼내 김 군에게 던지며 말했다.

"나가서 응급처치하고 조용히 처리해."

"예. 알겠습니다."

김 군이 피 흘리는 웨이터를 부축하고 밖으로 나갔다. 정소영이 화장실에서 막대 걸레를 가지고 와서 바닥에 묻은 피를 닦아내려 하자 금산이 일어서며 말렸다.

"그만 둬. 비린내 나서 술이 땡기겠나? 방 옮겨. 내가 마시는 술 가져오고."

"죄송합니다. VIP룸은 예약이 되어 있어서 다른 룸으로 모실게요."

용찬은 정소영의 뒤를 따라 방을 옮기면서 베이징의 내부를 둘러봤다. 그제야 중국 자본가들의 휴식처. 퇴폐의 본거지에 온 것을 알았다.

삽화=고재만 화백



실내는 비너스 조각상과 르누아르의 그림으로 장식된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금산은 가져온 술병의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더니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용찬에게 한 잔 권했다. 그러면서 불쑥 난데없는 얘길 꺼냈다.

"해연인 잘 있나?"

"갑자기 해연인 왜?"

"아냐. 그냥 궁금해서. 자 마셔 봐. 이거 한 병 값이 자네 월급보다 많을 걸?"

그리고는 자신은 언더글라스에 반쯤 부은 양주를 단숨에 목으로 넘겼다. 그의 모습이 쓸쓸하다고 느끼며 용찬도 잔을 비웠다. 혀를 감돌고 목젖으로 넘어가는 술은 부드럽고 감미로웠다.

금산이 다시 양쪽 잔에 술을 채우면서 말했다.

"자네 쓴 기사 봤어. 헌데, 자네는 현상만 보지 그 본질은 모르고 있어."

용찬은 금산의 말의 의미를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다.

"왜? 일부 장기불법체류자들의 일탈된 행동에 화교 전체가 비난받는 게 못마땅해선가?"

"자네가 화교의 설움을 알아? 어렸을 적부터 우린 가까이 해선 안 되는 더러운 인종 취급을 받았어. 냄새 난다고 배척하고 배달하는 사람을 거지처럼 무시하고 외상값은 갚지 않아도 된다는 사고방식에 많은 상처를 받았지. 난 따돌림 하는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무진 애를 썼어. 빵, 과자, 사탕과 담배, 심지어 돈까지 바치며 말이지."

"난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물론 자넨 예외지. 정말 친구로서 따뜻하게 대해줬으니까. 난 한국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어. 한때는 김산왕이라고 한국 이름처럼 가명으로 명함을 새기고 다니기도 했어, 하지만 내가 왕 씨인 이상 한국 사람이 되는 건 불가능 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지. 정부가 나서서 화교의 재산권, 공민권을 제한했고 심지어 꼭 같은 세금을 내는데 국수 값은 자율화하면서도 짜장면 값은 규제했어.

그렇다고 우린 완전한 중국인도 아니야. 같은 한족이면서도 본토에서는 화교라고 구별해. 어울리려고 하는데 우린 그냥 외국인이야."

"어렸을 때 한라문화제에서 봤던 기억나. 괭괭괭 하는 악기를 치면서 옛 중국사람 복장을 하고 키다리 지게 위에 올라서서 행진하던 모습 말야. 처음 보는 광경이라 신기하고 충격적이었지."

"그랬지. 헌데 한 가지 물어보자. 조선족은 너희 국민이야, 아니야?"

"그들은 중국 동포야. 허나 그들이 왜 북간도나 만주로 갈 수밖에 없었는진 알고 있지"

"그렇지. 국민이 아니고 동포지. 그들은 엄연히 중국인 조선족이야. 그런데 동포라면서 조선족을 무시하고 업신여기지? 그들이 미국이나 일본교포라면 그런 대접을 받을까? 우리 화교들은 그래도 본국에 가면 대우를 받아. 왜 그럴까? 결국엔 돈이야. 돈이 사람의 가치를 좌우하는 거야. 그래서 난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지."

금산이 그렇게 남모른 성장통을 심하게 앓은 것을 처음 알았다.

그런데 한족들이 조선족을 대하는 태도도 똑같다. 그들은 조선족을 중국인이라고 하면서도 멸시한다. 멸시만이 아니라 소수민족 출신들이 잘되는 것을 훼방 놓는다. 한 예로 중학교 때 뛰어난 소질을 가진 앞길이 유망하던 축구선수가 있었다. 그는 국가대표의 꿈을 지니고 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좌절하며 축구를 포기했다. 조선족이라고 경기에 뛸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일은 어느 분야에서 건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피는 속일 수 없는 것인지 조선족을 대하는 화교들의 태도도 다르지 않다.

"조선족들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우리 화교들이 쌓아 올린 노력들이 많이 망가졌어. 관광업계를 교란시키고 불법체류하면서 많은 문제 일으키고..."



"요우커는 잔챙이들이야. 산커들이 알짜지. 바링허우라고 8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돈을 쓸 줄 알아. 그중에서도 주링허우들은 손이 커서 쇼핑에 기천 만 원을 써."



용찬은 대화에 끼어들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이때다 싶었다.

"그걸 조장한 건 대룡관광 아닌가?"

금산은 용찬을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코웃음을 쳤다.

"누가 그래? 우린 중국에서 보내주는 손님들 받아서 현지 여행사들에게 배분한 것뿐이야.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제주에 왔는지 어떻게 아냐구?"

"자네가 데리고 온 거야. 물론 전세기 마련하면서 관광에 이바지한 공로는 인정해."

"그래서 그들을 밧줄로 묶고 끌고 다니란 말인가?"

금산은 자조와 비아냥 섞인 미소를 지었다.

"요우커(遊客, 단체 관광객)는 잔챙이들이야. 산커(散客, 개인 자유관광객)들이 알짜지. 바링허우(八零後)라고 8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돈을 쓸 줄 알아. 그중에서도 주링허우(九零後. 90년대 생)들은 손이 커서 쇼핑에 기천 만 원을 써."

"요즘 중국 관광객 중 20·30대 비중이 50%가 넘는다는 통계를 봤어."

"자네가 투기자본 어쩌고 하는데 지금 와서 그 자본들을 다 회수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봤어? 어차피 세계는 개방화 된 거야. 중국 자본이 모든 나라의 경제를 쥐고 흔들고 있다는 걸 아는가? 부동산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한국에서 주식이나 은행, 대기업 투자금 같은 중국의 금융자본을 철수해 버리면 하루아침에 경제공황 사태가 벌어진다는 건 알아?"

용찬은 중국이 경제적으로 미국을 넘어 곧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걸 심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에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해 술잔만 기울였다.

금산은 빈 언더글라스 잔에 양주를 부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자그만 하얀 병을 꺼내더니 뚜껑을 열어 두어 방울의 맑은 액체를 술잔에 떨어뜨렸다.

"너도 할래?"

말로만 들었던 물뽕이 분명했다. 용찬은 얼른 잔을 들어 피했다.

"난 싫어."

"겁내기는. 이거 마시면 기분 좋아져. 그리고 깨고 나면 아무 흔적도 없어."

"그런 거 왜 하는데?"

"네가 보기엔 가만있어도 돈이 알아서 굴러들어오는 것 같지? 얼마나 머릴 굴려야 하는지 제대로 잠을 못 자. 늘 불안하고 힘들지. 죽고 싶을 때도 있어. 그런데 이거 먹으면 세상이 해피 해. 잠도 잘 오고."

금산은 술잔을 들어 몇 번 흔들더니 단숨에 비워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난 제주도에 중국인 1만 명을 이주시켜 불야성의 왕국을 건설할 거야. 자네도 월급쟁이 그만두고 나랑 같이 힘 합치는 게 어때?"

금산은 하나랜드 프로젝트를 말하고 있었다.

"난 커다란 극장을 만들 거야. 자네 중국을 여행 했으면 봤을 거야. 대규모 인원이 출연하는 스펙타클한 버라이어티 쇼 말이야. 제주에 와야만 볼 수 있는 제주의 신화와 역사를 주제로 한 종합퍼포먼스를 개발해서 야간 관광 상품으로 만들 거야. 값싼 중국 노동력을 활용하면 대박이 터질 거라구. 자네 거기 극장을 맡아주지 않겠나?"

친구를 위한 금산의 선의는 믿지만 회유라는 속셈이 뻔히 보였다.

"좋은 아이디어군. 고맙지만 난 배부른 돼지보단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로 작정하고 기자가 됐네."

금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옛 우정을 생각해서 제의한 것인데 싫다면 할 수 없지. 난 곧 일본으로 진출할 생각이야."

"그렇게 돈 벌어서 뭐 할 건데?"

"권 기자. 돈이 무엇인지 아나? 없는 자에겐 빵에 불과하지만, 가진 자에게 돈은 권력이야. 돈이면 뭐든 할 수 있어. 돈이 자유를 주고 행복을 주지."

"인간성을 마비시키는 마약 아닌가? 돈맛에 취해 괴물이 되는 사람도 많잖아?"

"흐흐흐, 자넨 행복한가? 난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난 돈 벌면 우선 여기다 국제예술학교를 세울 거야, 대룡문화센터도 만들어 중국과 문화교류도 상시적으로 할 거야. 함께 사는 사람들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제주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려는 금산이 가상하게 생각됐다. 용찬은 행복이란 인생의 가을쯤, 살아온 과거를 반추하며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금산의 눈은 반쯤 풀려 있었다.

"헌데 삼미동 차이나타운 말이야, 법적으로 제동이 걸린 것 알고 있지?"

"제동이 걸리면 그걸 팔아먹은 놈들이 책임지겠지. 우린 아무 문제없어."

"종필이 형 회사도 협력 업체라면서?"

"그 새끼 사기꾼이야. 쌍놈의 새끼. 리화의 인생을 망가뜨려놓고. 이젠 조선족 회사 앞잡이가 돼서 날 조롱하고 있어. 손도끼로 목 잘라 버릴 거야 개새끼."

그의 말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장종필에 대한 분노는 벽처럼 단단했다.

"그래도 친구잖아? 삼총사 잊었어."

"친구? 흥. 그놈이 언제 날 친구 대접했는데? 늘 날 이용해 먹었지. 개고기 같이 굴던 버릇 버리지 못하고 날 경멸하고 있어. 배신자들은 내 가만 안 놔둘 ..."

말끝이 허물어지더니 콕 꼬꾸라지며 잠이 들었다. 얼굴은 편안하게 웃는 표정이었다.

용찬에겐 '배신자'라는 말이 하나도를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렸다.



용찬은 사회가 썩지 않도록 소금의 역할을 하겠다는 신념으로 기자가 되었다. 금산의 말을 듣고 나니 화교들에 대한 기사를 계속 써야 하는가에 대한 갈등이 일었다. 그러나 술 탓인지 그는 금세 결단을 내렸다.

'그래 오늘은 일이 아니라 친구와 어울린 거다. 내가 한 번 눈 감는다고 세상이 달라지나?' 용찬은 그러면서 그걸 우정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강준 작가 joon44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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