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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찬 맛집을 찾아서
[당찬 맛집을 찾아서] (151)서귀포시 하효동 베지그랑
꿈을 담은 요리에 철학과 예술을 입히다
조흥준 기자 chj@ihalla.com
입력 : 2018. 07.19. 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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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지그랑의 내부모습 사진=조흥준기자

인테리어·세팅·요리까지 제주 느낌 '물씬'
메밀면·바싹 불고기와의 이색 궁합 '일품'

요거트·할손트 독특한 디저트 '인기 만점'


김치를 잘 담그는 할망의 요리는 분명히 맛있었지만 한 번도 동일한 맛이 나온 적이 없었다. 손맛보다도 요리를 만드는 마음가짐과 정성이 더 중요하다는 할망의 비결 아닌 비결. 서귀포시 하효동의 베지그랑이 그렇다. 원래는 '음식이 기름지다'는 뜻의 제주어지만 '눈이 호강한다' 또는 '만족스럽고 맛있다'를 넘어 '맛으로 행복하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연인들이 사랑스러운 시간을 즐기고 싶을 때나 손님 대접을 제대로 하고 싶을 때, 혹은 요리 맛만 보는 미식가가 아니라 요리 관람객이 되고 싶을 때 베지그랑을 한 번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가게 입구에서부터 철판에 적힌 '나는 요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내부로 들어오면 돌·나무가 어우러진 자연스럽고 편안한 스타일에 마음이 저절로 풀어진다. 스토리가 담긴 안내서 같은 느낌의 제주 갈천으로 만든 메뉴판엔 황토, 천연오일, 친환경 페인트, 원목, 좋은 식기 등 인테리어 소재까지 세심하게 적어 놓았다. 베지그랑을 운영하는 푸드 스타일리스트 겸 세프인 고지영씨는 인테리어였던 경험을 살려 창고를 직접 꾸몄다.

바싹 불고기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면 이때부터 세프는 바빠지기 시작한다. 조리와 서빙도 혼자 도맡아한다. 음식만 만들고 내오는 것이 아니라, 찾아온 손님에게 일일이 요리의 내력과 먹는 방법을 설명해 준다. 심지어 포크와 수저를 놓는 받침대와 꽃 장식 등 세팅 하나하나조차 각기 다르면서도 전부 세프의 손길이 닿아 있다.

연두부나 메이드 후레시 치즈로 입맛을 돋우고 나면, 대로 엮은 납작한 그릇 차롱과 간장(소스) 그릇이 제주 오름을 형상화한 듯 꾸며져 나온다. 세프가 알려주는 대로 간장 소스를 만들고, 차롱에 '메밀면'을 담아 물기를 뺀 후 고추냉이를 살짝 떠서 면에 묻힌 다음 만들어 놓은 간장 소스에 살짝 찍어 먹는다. 면의 물기에 소스가 싱거워질까봐 조금씩 간장을 넣어 먹으라는 세프의 세심한 배려에 더욱 입맛이 당긴다. 면을 먹고 있는 동안 제주돌과 꽃을 품고 있는 '바싹 불고기'가 나온다. 잘게 다진 제주산 돼지고기에 사과, 꿀 조청 등을 넣고 버무려 만든 불고기는 포크로도 잘 썰어지면서도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전혀 맞지 않을 것만 같은 담백한 메밀면과 기름진 바싹 불고기와의 의외의 궁합은 요리를 먹는 손을 멈추지 않게 만든다. 그 맛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계절에 따라 맛도 달라진다는 동초(김치)가 곁들여진다.

요거트

베지그랑에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다. 입으로 요리만 먹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요리를 감상하고, 귀로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여유를 갖고 요리를 관람할 줄 알아야 한다. 그제야 내부 인테리어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친환경 소재부터 제주의 돌과 바람을 형상화한 작품들, 요리에 쓰인 꽃과 풀도 제주의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여기에 제주산 식자재뿐 아니라 조리도구, 식기, 세제에 이르기까지 요리를 향한 모든 것들에 세프의 철학이 담겨 있다. 이러한 노력과 아이디어는 베지그랑에서만 만날 수 있는 디저트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제주전통 옹기에서 발효시킨 '요거트'는 세프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이색 디저트 중 하나다. 가게 주변 밭에서 방금 따온 풀들이 장식으로 깔린 채 유리잔에 담겨 나온 요거트는 역시나 먹는 순서와 방법이 있다. 수저로 요거트 한 입을 크게 떠서 요거트 맛을 본 뒤, 밑에 깔린 꿀과 요거트를 잘 섞어주는 것. 요거트 위에 살짝 얹어진 산딸기는 맨 마지막에 먹는 것이 산뜻하고 좋다.

할손트

할망과 손지의 추억의 디저트에서 따온 '할손트' 역시 베지그랑에서만 볼 수 있는 요리 재밋거리다. 어릴 적 할머니가 해주신 양갱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는 할손트는 접시 맨 아래에 팥과 견과류를 깔고 투명한 우뭇가사리를 살짝 얹었다. 그 위에 아몬드와 산딸기로 수수한 꽃을 심어 놓았다. 우뭇가사리와 팥을 한 스푼에 떠서 먹는데 팥을 많이 뜰수록 그 맛이 달아진다. 팥과 우뭇가사리를 입에 머문 채 커피를 살짝 들이켜서 함께 먹으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팥빙수 비슷한 양갱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꽃을 두고 연인끼리 번갈아 떠먹으면서 누가 꽃을 망가뜨리는지 내기를 하기도 한다고.

세프 고지영씨는 "단순하게 보면 간단하지만 깊이 생각하면 한없이 깊어지는 것이 요리"라며 "요리를 내놓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정성과 마음이 담겨야 하고 그래야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차려진 음식만이 아니라 그 음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요리들을 접해봐야 한다고. 고향 제주와 할망과의 추억까지 아이디어로 묻어 나오는 그의 요리는 그래서 소울푸드를 닮았다. 고향과 전통과 추억의 음식에 몸과 마음까지 풍족하게 채울 수 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가짐이 고지영 세프가 요리하고 있는 꿈이다.

베지그랑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준비를 시작해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문을 받는다. 요리를 천천히 관람하기 위해서는 전화 예약이 좋으며, 식사 시간은 최소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의 여유를 가질 것을 추천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에는 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조흥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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