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자 2100여명 중 1400여명 가족품으로 못 돌아와"참전용사들 존경 받아야… 명예회복 선양사업 우선"
[한라일보] "6·25 시기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불행하게 자랐죠. 부모 없다고 멸시 당하고 '월사금도 안 내는 놈'이라고 손가락질한 선생도 있었어요. 그런 멸시는 정말 견딜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24일 강응봉 전몰군경유족회 제주특별자치도지부장(74)은 6·25로 아버지를 잃은 후의 삶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강 지부장의 아버지는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되는 백마고지 전투서 전사한 고 강승우 소위(사진)다.
강 소위는 1950년 8월 1일 육군에 자원입대하며 6·25에 참전했다. 강 지부장은 "당시엔 제주도 사람들은 빨간 물이 들었다면서 받아주지 않을 때인데 아버지는 혈서까지 쓰면서 조국을 지키고자 입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2년 뒤인 1952년 10월 12일 강원도 철원에서 벌어진 백마고지 전투는 그의 생전 마지막 전투가 됐다. 강 소위는 당시 국군의 3배 이상 병력을 보유한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적 기관총 진지를 격파한 후 전사했다. 이후 강 소위는 참전의 공을 인정받아 지난해 서귀포시 성산읍 가족묘에서 국립제주호국원으로 이장됐다.
강 지부장은 아버지가 자진입대한 그해 10월에 태어났다. 생전 보지 못한 아버지의 얼굴을 사진으로밖에 접할 수 없었다. 아버지 없이 통한의 세월을 보냈으나 강 지부장은 "아버지가 누렸어야 할 영광을 지금 내가 누리는 것 같아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했다.
여전히 6·25가 다가오면 마음 한켠이 무거워진다는 그는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우려했다. 그는 "6·25 때마다 마음이 안 좋다. 일어나선 안될 전쟁이 동족 간에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비극"이라며 "이념 때문에 치른 전쟁의 희생이 너무나 크다.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끝나길 소망한다"고 기원했다.
더불어 그는 제주가 6·25 이전 발생한 4·3으로 이중의 고통을 겪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주에는 6·25 전쟁 전에 4·3이라는 큰 사건이 있어 제주도민들의 삶은 더 어려웠을 것"이라며 "도민이 갖고 있는 이 아픔은 유가족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존경 받아야 할 6·25 참전용사들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며 "국가와 지자체도 당장의 시혜보다는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선양사업에 집중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강 지부장의 사례와 달리 참전용사의 유해가 발굴되지 않거나, 신원 확인이 되지 않아 전사자의 마지막을 기억하지 못하는 유족들이 많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따르면 발굴 사업을 시작한 2000년 이후 지난해까지 총 1만3383구의 유해가 발굴됐지만 신원이 확인된 사례는 256구(1.9%)에 불과하다.
제주 출신 6·25 참전용사 1만3000여명 중 전사자는 2150명으로, 이중 104명(2000년 이후 발굴 유해는 3구)의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628명이 신원 확인을 위한 유가족 시료(혈액 정보)를 확보해 유해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 나머지 1418명의 전사자는 유가족 시료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는 "전사자들의 신원 확인을 위해 유가족들의 채혈이 절실하다"며 유가족들의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6·25 전사자 유가족들은 전국 보건소에서 유전자 시료 채취를 할 수 있고, 채혈 키트를 집으로 받아볼 수도 있다. 이동이 불편하다면 방문 채혈도 가능하다. 자세한 사항은 국방부(1577-5625)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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