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69)서귀포시 안덕면 상창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69)서귀포시 안덕면 상창리
곶자왈 끌어안고 산방산을 품은 ‘산거북이’ 테마마을
  • 입력 : 2015. 12.15(화)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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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리아힐에서 내려다 본 곶자왈과 멀리 형제섬, 마라도, 산방산이 눈앞에 다가온다(위). 마을회관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아래).

약 230여년전 설촌… 안덕면 마을중 가장 넓은 터전 가져
마라도와 형제섬, 산방산이 보이는 주변 풍광은 상상초월
마을 소득창출위해 생태자원 활용 ‘휴양과 치유’ 사업 진행
주민들 "주변 사설관광지들 마을과 상생의지 부족" 지적



상창리는 안덕면에서 면적으로는 가장 넓은 마을이다. 큰병악(골른오름) 작은병악(족은오름)에서 내려오며 상잣성과 중잣성, 하잣성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중산간 목마장 10개의 소장 중 7소장 지역. 병악에서 남서쪽으로 논오름 지경까지 이어진다. 물길로 따지면 창고천 상류지역을 따라 내려오면서 동쪽 상예동과 경계를 이룬다. 지금은 더 큰 길이 상창리를 교차하며 지나가니 교통의 요지로 탈바꿈 하였다. 그럴 법도 하다. 북서쪽은 동광리, 남서쪽은 서광동리, 남쪽은 창천리, 감산리, 화순리로 감싸여 있으니. 안타까운 것은 병악에서 화순곶자왈까지 이어지는 곶자왈의 흐름이 여러 지역에서 끊어지고 파헤쳐졌다는 것이다. 개발의 여파이니 아픔을 함께 할 수밖에. 오충민(73) 노인회장은 "설촌의 역사는 230 여년 전에 양아리쿰(明羅洞) 지역에 진주 진씨가 들어와 거처를 정하고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지금도 이사무소에 보관 되고 있는 상창리 호적중초에 의하면 1909년 1월 기준 호구 조사에는 가호수 144호, 인구가 510명에 이르는 제법 큰 마을이었지요." 1900년에 창고천리에서 분리 되어 상창천리가 되었다가 14년 뒤 상창리라는 마을이름을 쓸 정도로 규모와 세력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이라 했다. 지금은 본동과 신남동 2개의 자연부락으로 구성된 150 여 가구 500명에 육박하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에서 수확한 콩으로 부녀회가 운영하는 두부전문점.

골른오름(큰병악) 중턱에서 내려 보는 풍광은 절경이다. 곶자왈 숲이 바다로 흘러가는 모습, 멀리 마라도에서 화순 바닷가와 산방산으로 이어지는 화산섬 특유의 해변 흐름. 한라산 방향으로 바라보면 백록담까지 이어지는 지맥의 서사시가 굴곡 없는 목소리로 낭송되는 것 같다. 마을 어르신들의 설명에 의하면 삼나무들이 없던 시절에는 화창한 날 집 마당에서도 멀리 마라도에 너울 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솟아나는 물이 없는 이 지역을 개척하고 삶의 터전으로 바꿔 놓은 조상들의 땀방울이 배어있는 마을이다. 주거지역 일대에 큰 암반지대를 골라 힘겹게 파서 빗물을 받아 생활용수로 사용했다는 '성구못'은 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 마을공동체의 중심이었다. 산거북이가 와서 살았다는 전설을 가진 성구못은 상창리를 이르는 지명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 곳에서 시작하였고 그 정신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땅. 마을만들기 사업에 임하면서도 테마는 산거북이 연못을 기점으로 시작하고 있다. 옛날의 식수 자원이 지금은 생태자원이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격세지감이다. 마을 안길을 활용한 '산거북이 테마길' 조성과 창고천에 소들이 스스로 찾아가서 물을 마신다는 뜻을 가진 쇠물도 인근 자연환경을 이용하여 탐방객을 맞이하는 마을공동체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부녀회를 중심으로 마을에서 생산된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대로변에 '콩이네두부'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맛이 일품이다. 식사 시간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다. 부녀회원들이 몇 년에 걸쳐서 발전시킨 맛의 노하우가 차츰 명성을 얻어가고 있다고 한다.

김성인 이장

마을 영역 안과 인근에 관광시설들이 잔뜩 있다. 세계자동차박물관, 카멜리아힐, 유리박물관, 헬로우키티 아일랜드 박물관, 테디베어 골프장 등 외지인들이 자본을 투자하여 좋은 교통여건을 무기로 돈을 벌고 있지만 정작 주민들은 허전하다. 김성인(55) 이장이 밝히는 마을 현실은 이렇다. "외형적으로 대도로가 마을 중심을 지나가지만 마을 안길은 두 세대 전 모습 그대로입니다. 자동차 시대에 전혀 대응 할 수 없는 마을 안길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정주 여건 차원에서라도 이 문제를 풀어 줄 수 있는 행정 지원이 요구되는 것이지요." 창천교차로에서 느끼는 폭 넓은 도로 상황과 너무도 극명하게 대비되는 마을 안길과 농로들을 통하여 개발의 소외감을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강기천(61) 수석개발위원은 "저희 마을만큼 발전 가능성이 풍부한 마을은 없습니다. 다만 마을 주민들이 공동체의식을 농경사회 논리에서 벗어나 시대정신에 맞게 기업 마인드로 전환시키는 과제를 풀어간다면 사통팔달 도로 여건에 힘입어 다양한 마을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고 말했다.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암반지대를 파서 빗물을 받아 생활용수로 사용했던 성구못.

양정여(41) 마을회 사무장의 생각은 보존을 통해 지속가능한 개발에 무게 중심이 있었다. "상창리의 자연자원은 결코 제주의 다른 마을에 뒤지지 않습니다. 휴양과 치유를 가능하게 하는 경관적 요소들을 주민 소득 향상을 위한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의 자신감이 더욱 절실한 현실입니다. 시설물을 크게 지어서 성공 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우리 마을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자원들을 활용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사업적 가치를 극대화 시킬 것입니다." 마을 사업을 함에 있어서 자부담을 고리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첨예화 되는 행정적 현실에서 참으로 당차게 상창리의 미래를 열어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보인다.

왼쪽에 큰병악과 오른쪽 작은병악을 주봉으로 안덕곶자왈이 시작됐다.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 많은 관광 관련 업체들이 상창리에 들어와 돈을 벌면서 마을 주민들과의 상생 협력 방안에 대해서는 어떠한 노력과 고민을 했을까?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없다'고 했다. 농업을 중심 생업으로 하는 마을이라고 그냥 놔둘 것이 아니라 관광 마인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주민들의 마을만들기 사업을 지원하고 활로를 열어준다면 상창리 안에 들어와 있는 관광관련 업체들 또한 이익이 되는 것일 진데. 안타까운 기대감을 접더라도 상창리 주민들의 발전 의지는 대단했다. 앞으로 30년의 세월이 흐를 것이다. 상창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김성인 이장의 예측처럼 상창초등학교가 생겨서 많은 어린이들의 싱그러운 합창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미래는 만들어가는 것이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니까.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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