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41)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41)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만장굴 등 지질자원 보물이 가득 채워진 ‘용천수마을’
  • 입력 : 2015. 05.26(화) 00:00
  • 글자크기
  • 글자크기

묘산봉 부근에서 마을방향으로 바라본 모습(위)과 요트를 위한 마리나항으로 자리매김중인 김녕바다 전경.

곳곳서 고산리식 토기 출토 신석기시대부터 정착 추정
고려시대엔 대촌의 면모 배 왕래 빈번해 인구 집중
대대로 무속신앙 뿌리 깊어 1년에 한번 ‘돗제’ 관광자원화
자연·역사·문화자원 풍부 주민들 마을발전 전략 모색


섬 제주의 최북단 마을. 부속 도서를 빼면 그렇다. 지질 자원의 보물창고라는 명성답게 만장굴을 비롯하여 많은 굴들이 땅 속을 차지하고 있다. 자연환경 측면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하천이 없는 마을이다.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면 지표를 긁으며 바다로 흐르는데 김녕리 땅은 그럴 이유가 없다. 점성이 낮은 빌레용암이 넓게 펼쳐진 결과 그 얇은 용암이 굳어질 때 생긴 방대한 틈 사이로 빗물이 무한정 지하로 유입될 수 있기 때문. 지하로 들어간 물이 해수면 하부로 그냥 빠졌다면 김녕리라는 구좌읍 인구의 2할이나 사는 큰 마을 역사는 이룩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상부와 하부의 현무암질 용암류 사이에 일정 두께를 가진 점토층(화산회토 퇴적층)이 있어 지하로 스며든 빗물이 해수면 하부로 흐르는 것을 방지하는 곳들이 생겨났다. 이처럼 자연이 제공한 풍부한 용천수가 있어 사람이 몰려들어 집성촌을 형성 할 수 있었던 것. '용천수마을'이라고 부를 정도로 김녕리는 용천수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가옥이 운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8개의 자연마을이 모여 김녕리를 이루는 것도 용천수를 중심으로 파악하면 쉽다. 남흘동은 성새기물, 한수동은 고냥물과 수감물, 용두동은 당올래물, 대충동은 원빌레물, 동성동은 게웃샘물, 신산동은 한질물과 청굴물, 청수동은 한질물과 왕절물, 봉지동은 고냥물을 중심으로 씨족사회를 이루며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기에 풍부한 김녕리 용천수는 인간 생존의 공간을 열어주는 역사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거대한-풍력발전기가-묘한-분위기를-연출하는-김녕해수욕장

김녕리 곳곳에서 고산리식 토기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봐서 신석기시대부터 정착민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고대국가 탐라가 성립된 이후의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궤네기동굴과 묘산봉동굴 등 동굴 주거유적이 발견되었다. 김녕리 설촌의 역사는 자연 환경적 요인과 집단화 된 인간이 만나 어떤 과정을 통해 번창하게 되는 지 보여주는 사례 이기에 연구해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 입산봉과 묘산봉 일대 동굴에 살던 사람들이 남쪽으로 광활한 곶자왈 사냥터와 북쪽 바닷가 해변으로 먹을 것을 찾아 나서고, 평지에 땅을 일궈서 곡식을 얻는 모습.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시기에 제주섬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을 이치에 합당하게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여건을 구비한 마을임에도 이야기 자원의 힘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용천수이자 차갑기로 소문난 용천수 노천 목욕탕 청굴물

고려시대 김녕현(金寧縣)으로 모든 면에서 대촌의 면모를 갖춘 곳이었다. 해변 지형이 자연스럽게 배를 댈 수 있는 구조다. 용암이 바다와 만나면서 항만 공사를 해줬던 것. 한개(大浦)라는 포구는 김녕마을 서쪽 해변에 있다. 이 포구에 서울뱃자리라는 칸살을 보면 얼마나 큰 배들이 서울을 비롯하여 한반도로 왕래하였는지 알 수 있다. 상선은 물론 병선도 댈 수 있었다던 포구를 지녔기에 물동량 유입과 함께 인구 증가의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4000명이 넘던 인구가 지금은 1000명이 줄었다고 탄식을 한다. 천하대촌 김녕이라는 자부심이 마을주민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입산봉 남쪽 밭에서 마늘 수확을 하고 있는 농민들

김녕리는 제주의 정신문화가 마을공동체의 숨결에 아직도 박도치는 곳이다.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0호 '멸치후리는 노래'의 서우젯소리 부분을 듣노라면 이런 박력 있고 중독성 강한 리듬을 세계무대로 들고 나가지 못하는 현실이 부끄럽다. 가히 제주의 대표리듬이라 할 수 있으니. 조상 대대로 내려온 무속신앙이 뿌리가 깊다. 일본에 건너가서 사는 김녕리 출신 재일동포들도 1년에 한 번은 지낸다는 돗제는 김녕리민들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굿이라는 제의가 끝나고 동네 사람들과 돼지고기를 나눠먹던 풍습. 몸국을 끓여 대접하고.

임성만 이장

부러울 정도로 풍부한 자연자원과 역사, 문화 자원을 가진 김녕리의 오늘은 치열한 도전의 시기다.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다른 마을들과의 경쟁의식 차원에서 불붙었다고 한다. 임성만(63) 이장이 밝히는 마을발전 전략은 "무엇보다 주민 복지에 있습니다. 마을규모로 볼 때 목욕탕 시설이 필수적이니 이를 기필코 만들겠습니다. 어울림 쉼터 북쪽 해안도로 안쪽에 자연풀장 시설과 해수사우나를 만들어서 관광인프라를 확대할 것입니다." 황당한 사실은 자연풀장 예정지로 몇 년 전부터 마을공동체가 추진해온 자연풀장사업이 작년 10월 도 조례를 통하여 자연녹지에서 절대보전지구로 바뀌어버렸다는 것이다. 행정이 아직도 주민들과 소통하지 않는 일방적인 행위를 하여 민원을 야기 시키고 있는 것이다. 양옥현(69) 개발위원장은 농촌노령화 대비책을 제시하였다. '농경지 구획정리 사업을 통하여 기계화, 자동화 하지 않으면 일손이 없어 농사를 접어야 할 상황이 올 것이다.' 마을 경제 어떤 대비책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지 극명하게 내다보고 있었다.

강봉우(39)청년회장에게 '하늘에서 100억이 무릎에 떨어지면 마을의 미래를 위해 어떤 사업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김녕해수욕장 주변 땅을 마을회에서 사서 관광투자기업과 대등한 지분을 가지고 콘도를 겸비한 관광사업에 투자하겠습니다. 거기에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마을 발전을 견인할 것입니다." 외지 자본의 제주 땅 잠식에 대한 위기의식과 거부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김녕리 땅 만은 지키고 싶은 사명감이랄까. 이옥순(63) 부녀회장이 93세가 되는 30년 뒤 김녕리에는 김녕고등학교가 생겨있을 정도로 인구가 증가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데는 한 세대 정도면 충분하다.

김녕리는 전통적으로 강인한 사람들이라는 외부의 인식이 있다.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불도저처럼 힘 있게. '김녕사람'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2724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