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ED 지상전] (8)이창희의 '제주나무와 돌담'

[갤러리ED 지상전] (8)이창희의 '제주나무와 돌담'
수만 번 마른 붓질로 그린 돌의 세월
  • 입력 : 2021. 01.14(목)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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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0년 넘게 나무와 돌을 붙잡았다. 그러다 제주를 만났다. 2007년부터 제주를 오갔고 2012년 제주대에 부임하면서 이 섬의 돌과 나무가 온전히 그의 화면 안에 깃든다. 제주대 미술학과 이창희 교수다.

지금까지 서른한 차례 개인전을 이어온 그는 10년 전부터 제주의 삶과 풍경을 껴안았다. '제주도를 보다', '돌담', '제주를 마음에 담다', '제주와 어우러지다', '돌담-숲', '돌담 너머'란 주제로 제주 안팎에서 작품을 발표했다.

갤러리 이디의 제주 중견 작가 11인 초대전에도 장지에 수묵으로 형상화한 제주의 돌과 나무가 있다. 2015년 작품인 '제주나무와 돌담', '제주나무', '제주목' 세 점이다. 검은 빛 돌담과 팽나무(폭낭)가 실경으로 외로이 서 있으나 그것들이 품고 있을 서사는 여백을 채우고도 남는다.

이 작가가 "거미줄처럼 나뭇가지들이 촘촘히 얽혀있다"고 표현한 팽나무는 비바람을 견디고 시린 눈을 맞으며 살아남은 인고의 모습 그대로다. 구부러지고 상처난 몸체를 드러낸 채 때때로 마을 어귀에서 지친 우리를 맞는다. 돌담도 다르지 않다. '돌챙이'들이 오랜 경험으로 툭툭 쌓아올린 제주 돌담은 돌들이 서로 의지하며 외풍을 막아줬다. 그런 팽나무와 돌담은 소리없이 말한다. "괜찮다, 괜찮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면 되니까."

특히 그는 돌에 매료되었다고 털어놓는다. 다른 자연물이 늘 변화하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돌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치않는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근본을 잃지 않는 묵직함"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드로잉처럼 보이는 그의 작업은 수묵을 사용한 갈필법(渴筆法)과 적묵법(積墨法)으로 탄생했다. 갈필법과 적묵법은 잇닿는다. 갈필법은 마른 붓질로 사물을 그려내는 것을 일컫는다. 한 획 한 획이 모여 만 획을 이루듯 수만 번을 붓질해 중첩하며 형상을 만들어 가는 방식이 적묵법이다. 돌과 나무가 수천 년의 긴 시간을 건너왔듯, 작가는 그만한 수량의 붓놀림으로 대상을 포착한다.

이 교수는 홍익대와 동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2003년 대한민국미술대전 구상 부문 대상 수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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