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제주아트센터에서 막이 오른 제16회 제주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빛나는 순간'에 그 여자와 남자가 있었다. 제주어 발음 그대로 영문 자막에 표기된 '살암시민 살아지메'가 여운을 남긴 '빛나는 순간'은 코로나 시국을 딛고 지난 봄 제주에서 촬영된 작품으로 제주 관객들과는 이날 제주영화제를 통해 처음 만났다.
소준문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빛나는 순간'은 '바다에서 숨 오래 참기'로 기네스북에 오른 70대 해녀 진옥(고두심)을 다큐멘터리에 담기 위해 제주에 내려온 PD 경훈(지현우)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가수 양정원, 소리꾼 안민희, 연극인 진정아·이영원 등 제주 배우들도 화면을 빛냈고 촬영지인 성산읍 삼달리 해녀들도 출연자로 나섰다.
영화는 초반 해녀 홍보물로 느껴질 만큼 설명조로 제주해녀 이야기를 펼치다가 두 사람이 곶자왈로 들어서는 장면 이후로 입체감을 얻는다. 그곳에서 해녀 진옥은 경훈의 카메라를 쳐다보며 어릴 적 체험한 1948년 잔인했던 봄의 사연을 꺼낸다. 숨을 참고 자맥질하는 진옥의 고된 물질은 제주4·3의 트라우마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거였다.
'원 테이크 원 컷'으로 촬영했다는 그 장면은 영화의 제목처럼 빛나는 순간이다. 제주가 고향인 배우 고두심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부모에게 들었던 4·3을 떠올리며 시나리오에 없는 대사를 더해 객석을 울린 그 신을 찍었다.
끝내 차오른 해녀의 눈물은 경훈이 지닌 세월호의 고통과 연결되며 수난이면서 치유의 현장인 바다로 관객들을 이끈다.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겪어온 해녀 진옥을 통해 관객들이 '제주도 푸른 밤'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제주를 볼 수 있을까. "사랑을 품지 않고 어찌 물에 가겠는가. 어떤 절박함 없이 어찌 극한을 견디겠는가. 그러니까, 당신들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말없는 물노동으로 보여주었다. 우리 앞에 거대한 위로를 건네주었다. 어쩌면 우리는 큰 빚을 지고 말았다."(허영선 시집 '해녀들' 중에서)
제주영화제는 '빛나는 순간'의 배급 개봉을 지원하고 응원하는 '제주도민 서포터즈'를 모집하고 있다. 30일 아트인명도암에서 그 첫 모임이 열렸다. '빛나는 순간'은 12월 23일 오후 7시30분 제주자동차극장에서 한 차례 더 상영된다. 문의 748-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