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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우의 한라칼럼] 고개를 들고 가을 하늘을 보자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입력 : 2020. 10.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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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대충 마친 가을의 오후. 태양이 남서쪽으로 기울어 큰 삼나무에 걸리기 전에 일을 접는다. 폐를 튼튼하게 하며 기침을 멎게 한다는 도라지와 이파리가 깻잎과 비슷해 식용채소이며 태아를 안정시키는 작용을 한다는 소엽 씨앗을 털었다. 앙상하게 말라버린 가지로 변했지만 한때는 우렁찬 이파리와 꽃을 피웠던 시간과 기억을 씨앗으로 남겼다. 내년 봄을 기약하면서.

작약 주변에 자라는 잡초를 제거하던 얼굴을 들고 밭모퉁이에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저녁 들녘풍광은 낮에 보았던 모습과도 다르다. 숲을 베어낸 공터에는 가을과 함께 피어난 억새가 불어오는 바람결에 파도타기를 하고, 길 옆 옹벽을 가렸던 담쟁이도 붉게 물들었다. 어디 이뿐인가. 한 달 전쯤인가에는 7년을 땅속에서 생활하다 일주일의 여생을 마친 매미가 울던 그 자리엔 귀뚜라미가 어둠을 어떻게 알았는지 끊어질 듯 애타게 짝을 찾고 있다. 자라는 것들의 소리와 윤기를 가졌던 여름이 지나가자 겨울로 가기 위한 낮은 엎드림으로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에서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농부, 네 발의 개와 노루도, 30개의 발을 가진 지네도, 나무와 여름에 농부를 괴롭히던 잡초와 같은 생명들 그리고 존재하는 것들은 평등하게 그렇게 계절을 받아들이고 있다.

허나 고개를 돌려보면 즐비한 고층아파트와 건물들, 아침에 왔다가 저녁이면 다시 돌아가야 하는 곳이다. 지난 봄 앙상한 나뭇가지가 꽃망울을 터트리며 소생의 기적을 목격하고, 성장의 드라마를 썼던 여름을 거쳐 영금과 수확,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까지 답답함이 사라지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기침과 재치기도 남의 눈치를 봐야 하고, 마스크를 반드시 써야 하는 물리적 답답함도 있지만 팬데믹, 언택트, 플랫폼 등 듣기에도 생소한 용어가 난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사회분위기에 잘사는 사람과 하루하루를 벌어 살아가는 이들 사이에 놓여있는 보이지 않는 벽이 더욱 높게 쌓이고 있다. 택배사업자들은 많은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데도 정작 그곳에서 노동을 제공하는 이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힘들다. 최근에는 또 택배노동자가 사망했다. 과로사라고 한다. 이런 소식을 접해도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풀을 뜯는 얼룩말들이 동료 하나가 사자에게 갈가리 찢기는 것을 목격하며 신경질적으로 울어대다가 그 상황이 끝나면 평온하게 다시 풀을 뜯는 것과 같다는 자괴감으로 괴로워할 뿐이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은 언젠가 우리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기에 연대가 필요한데도 말이다. 함께 살아야 하는 게 인간의 숙명이다. 이 숙명에는 평등이라는 사회정의가 핵심인데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저무는 태양 위쪽 붉은 하늘에는 사자 같기도 하고, 그의 먹이가 된 얼룩말의 모습으로 변하며 검붉은 구름이 떠간다. 그래서 어떤 이들도, 많은 종교에서도 저곳을 죽으면 간다는 영적 세계의 지정학적 위치로 지목했으리라.

저곳에는 영혼과 육체까지 끌어 모으고, 탐욕이 넘쳐나고 돈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이 지상의 정글 같은 세계가 펼쳐지지는 않을 테지. 그래서 고개를 들고 가을 하늘을 바라보자. 평등한 세상을 기대하며. <송창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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