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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한 풀어드릴 수 있어 다행"
[한라人터뷰] 故김두성 선생 유족 김인보씨
故 김두성 선생, 신청 34년만에 애국지사 선정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입력 : 2019. 12.01. 18: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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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김민보씨가 그의 부친 고(故) 김두성(金斗性) 선생의 사진과 지난달 17일 추서 받은 건국훈장 애족장을 들고 있다. 김현석기자

"지금이라도 아버지의 명예가 회복돼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린 느낌입니다."

 1일 만난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김민보(71)씨는 그의 부친 고(故) 김두성(金斗性) 선생의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받은 소감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김민보 씨는 지난 1986년도부터 고(故) 김두성 선생의 애국지사 인정을 위해 아버지의 공적을 수차례에 걸쳐 국가보훈처에 보냈으나 매번 탈락의 좌절을 겪어왔다. 이유는 남로당원·조총련에 가입했었다는 누명과 해방된 이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것이었다.

 고(故) 김두성(1913~2005) 선생은 1931년 1월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21살의 나이로 요절한 한영섭 선생의 시신이 고향 함덕리로 오자 김두성 선생 등 함덕청년동맹원들이 장례를 치르고, 마을 우물에 '동지애도비(同志哀悼碑)'를 세웠다.

 일경은 항일의식이 들어간 비를 압류하고 주동자 6명을 검거했다. 이로 인해 김두성 선생은 주동자 가운데 최고 형인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고(故) 김두성 선생이 야학당에 매달았던 일장기 위에 그린 태극기. 김현석기자

 또 김두성 선생은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려 야학당에 매달고 학생들에게 국어·산수 등을 가르치며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고향에서 함덕축구회조직, 부녀회 활동, 독서회 자금 조달하는 등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그러나 4·3당시 남로당원이라는 누명이 씌어지면서 일본으로 도피를 했다. 또 일본에서 생활고에 시달리자 조총련계 은행에서 돈을 빌린 것이 조총련에 가입한 것으로 낙인 찍히면서 번번히 애국지사 선정에 탈락했다.

 김민보 씨는 아버지의 애국지사 선정을 위해 1931년 동아일보 신문기사 스크랩과 부산 교도소까지 가서 받은 당시 판결문 등을 자료로 제출하며 끊임없이 요청한 끝에, 고(故) 김두성 선생은 지난달 17일 제80주년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조국독립에 헌신한 공으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김씨는 "부친이 작고하시기 전 '아니라고 해도 믿어주지 않는 현실이 억울하다. 태극기를 덮지 못해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 한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며 "지금이라도 그 한을 풀어드리고,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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