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출신 경제인 스토리] (2)고경찬 벤텍스 대표

[제주출신 경제인 스토리] (2)고경찬 벤텍스 대표
고무신 신던 소년, 양말 장사로 시작해 나노바이오 선도
  • 입력 : 2025. 07.28(월) 03:00
  • 부미현 기자 bu8385@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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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찬 벤텍스 대표가 자신이 일군 회사의 수많은 제품 앞에 서있다.

‘1초 건조 섬유’부터 '축산 탈취제'까지… 독자 기술로 글로벌 공략
IR52 장영실상 8회 수상, 나이키·컬럼비아도 먼저 알아본 기술력
"좋은 기술도 시장 못 만나면 실패" 위기 속 벤텍스의 생존법칙

[한라일보] 한라일보는 제주 출신 기업인들의 활약상을 시리즈로 보도한다.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의 기틀을 만들어온 제주 출신 기업인들을 조명하고, 국내외 환경변화로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 경제가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그들의 경험과 조언을 듣기 위함이다. 시리즈 두 번째로 기능성 섬유기업에서 출발해 나노바이오 기업으로 거듭나며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 성공한 고경찬 벤텍스 대표를 소개한다.

지난 11일 경기도 판교테크노벨리 한 건물에 입주해 있는 (주)벤텍스 사무실. 고경찬 벤텍스 대표(65)가 인터뷰 도중 기자에게 특허받은 기술 한 가지를 선보이겠다며 솜뭉치를 내밀었다. 이어 솜뭉치에 불상의 용액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솜뭉치에 코를 대니 역한 냄새가 확 풍겼다. 고 대표는 곧바로 자신이 개발한 신물질이 든 용기를 꺼내 들었다. 기자가 보는 앞에서 그 용액을 분사했는데 방금 전 맡았던 심한 악취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고 대표는 복합 미네랄 성분을 이온화시켜 개발한 탈취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제주에도 축산 농가가 많아서 축산 악취가 골칫거리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핵심기술은 축산 농가의 고충을 상당히 해소해주고 있습니다."

고 대표는 1999년 기능성 섬유기업 벤텍스 설립자다. 벤텍스는 2019년 그 사업 범위를 나노바이오로 확장하며 제2의 창업에 성공해 눈길을 끌고 있다.

고 대표가 설립한 벤텍스는 앞서 서술한 탈취 기술 외에도 완벽하게 피부를 모사한 세계 최초 수분제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1초 만에 건조되는 섬유 '드라이존', 차세대 고 투습 방수 섬유 '브리맥스'가 그것이다. 또 배터리 없이도 최대 10도 이상 열을 높이고, 일체의 화석연료 에너지를 쓰지 않고 냉감과 발열 등 온도를 제어하는 나노기술에 기반한 초격차 섬유 원천 기술 특허도 갖고 있다.

그동안 벤텍스는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때 글로벌 기업 나이키 사에 태양광 반사소재를 공급했고, 땀을 냉매로 전환하는 기술은 미국 컬럼비아 스포츠 사의 제품에 적용됐다. 물속에 있다가도 물 밖으로 나오면 1초 만에 건조되는 신소재는 대한민국 전투 의류 규격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벤텍스는 수분·열·공기를 제어하는 나노화학 기술을 기반으로 척박한 업계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고 대표는 1960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서 태어나 고산초, 고산중, 제주제일고 졸업한 뒤 성균관대학교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했다.

고향 제주에서의 유년 시절은 빈곤했다. 초등학교 때까지 검정고무신을 신었던 그는 지금도 고무신을 잃어버리는 꿈을 꾸기도 한다. 취업이 잘된다는 이유로 성균관대 섬유공학과를 입학했다. 하지만 학비와 생활비는 스스로 장사를 해서 벌었다. 군 입대 중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제대하자마자 세 켤레에 1000원짜리 양말 장사를 했다.

"초등 4학년 때 집에 처음 수도가 생겼고, 중2 때 전기가 들어왔는데, 한 달에 25일 정도는 정전이었습니다. 마이너스 인생을 살아왔기에 기업 경영에 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 졸업 후 코오롱에 입사한 그는 8년 근무 후 중소기업에 스카우트됐다. 그런데 회사가 부도를 맞으면서 빚을 승계하고 계획에도 없던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지금의 벤텍스가 있게 된 시발점이다.

"당시 오너가 회사 문을 닫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누군가가 채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데 제가 부채를 승계하기로 하고 준비 안 된 창업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당시 제 연봉이 3500만원, 회사 부채는 3억8000만원이어서 저의 10년 치 연봉에 맞먹는 부채였지요. 무모한 판단이었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기술특허는 회사를 강소기업으로 키우고, 창업 이후 수 십 년간 어려움 속에서도 회사를 영속, 발전시켜 온 핵심 자산이다. 그의 회사 직원 중 30퍼센트가 연구 인력일 정도로 기술 개발에 공을 들여온 성과다. 그동안 120개가 넘는 특허와 산업계 최고의 기술상인 'IR52 장영실상'도 중소기업 최초로 8회나 수상했다. 2014년도 과학의 날에 동탑산업상도 받았다. 1초 만에 마르는 드라이존(2006년)을 시작으로 복합 발냉 냉감성 섬유 아이스필(2009년), 수분감응형 자기변신 스마트섬유 오토-센서(2010년), 체열반사섬유 메가히트(2011년), 광발열 섬유 히트렉스(2013년), 광발열 충전재 솔라볼(2014년), 접촉냉감 소재 쿨존(2015년) 등 이후에도 끊임없이 기술개발을 해오고 있다.

그에게는 공학박사 이외에도 피부과 전공 의학박사학위가 있다. 섬유도 하나의 피부로서 피부를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 공부했던 것이다. 그래서 피부를 모사한 소재를 개발했다.

"한국은 이미 섬유 생산 인프라가 중국, 동남아로 넘어갔고,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지식재산권 수출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무형의 자산을 실제 자산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고 대표는 자신의 나노화학 원천기술을 활용하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농업용 비닐하우스도 생산할 수 있어 이 분야에 대한 사업화도 준비 중이다.

이처럼 성공한 기업가로 평가받는 고 대표에게도 1999년 5월에 창업한 이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실패의 경험이 있다.

타 기업과 차별화된 기술에도 불구하고 업계 구조상 악성 재고와 클레임, 부실채권 발생이라는 리스크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열심히 일해도 남는 건 원단 재고와 휴지가 돼버린 어음 조각뿐이었다. 섬유 제조업은 일손도 많이 필요했다. 60여 명의 인원으로 300억 정도의 적지 않은 매출을 올렸지만 인건비, 임대료 등으로 빠져나갔다. 특히 그에게 2015년부터 2019년은 숨을 쉬기도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다. 거래처 부도로 회사가 힘들어지기 시작하자 직원들이 하나둘 떠났고, 거래은행은 대출을 중단하고 차입금을 상환하게 했다. 협력사들도 대다수 등을 돌려 버렸다.

"기업을 운영해 오면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과거 아웃도어 국내 시장을 타깃으로 했을 때 생산 아이템이 많다 보니 채권관리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행착오는 있지만 실패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실패는 결과적으로 멈춤이고 후퇴이지만, 시행착오는 하나의 긍정적 촉매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2019년부터 빠르게 구조조정을 하면서 주력시장을 스포츠 아웃도어 시장 대신 방산, 생활화학, 축산, 환경으로 변경해 나갔다. 그 결과 4년 연속 적자에서 3년 연속 흑자로 전환하고 판교테크노밸리에 작은 사옥도 마련하게 됐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시장을 잘못 선택하면 빛을 보지도 못하고 사라집니다. 좋은 기술을 가지고도 19년을 헤맸습니다. 성공에 대한 기억은 사막에 심고, 실패에 대한 기억을 옥토에 심을 수 있는 용기와 지혜로 버텨온 것 같습니다."

그는 세상에 없는 기술을 만들고, 이를 글로벌 기업과 협업을 통해 시장을 개척하는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대기업은 자동차, 중소기업은 자전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전거는 페달이 멈출 때 쓰러집니다. 바람개비도 바람이 안 불면 들고 달려야 합니다. 중소기업의 경우 기술과 철학이 진화하는 기업만이 지속경영이 가능합니다. 저는 성공이란 명예나 부가 아니고 인류가 좀 더 편리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는데 동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기술이 우리 인류의 삶에 긍정적으로 일조한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서울=부미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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