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업 재료는 여성들에게 익숙한 살림용 도구다. 환경재앙의 주범처럼 여겨지는 플라스틱 물건들을 수집하고 결혼 후 가졌던 주부 책상이나 오래된 재봉틀의 서랍, 저 먼 우크라이나에서 가져온 양재용 곡자를 이용해 제주시 원도심 비아아트 갤러리에서 내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이진아 작가다.
3년 만에 제주에서 개인전을 여는 이진아 작가는 이번 전시에 '닿을 수, 닿을 수 없는'이란 이름을 달았다. 닿는다는 건 욕망을 말한다. 드로잉, 공예, 설치 등 장르의 경계를 오가는 작품에 사랑과 욕망이 실현되거나 좌절된 사연이 녹아있다.
종전 작업이 뜨개질을 주로 했다면 이번엔 나무 상자를 직접 짜고 옷을 통해 마침내 우리의 몸에 닿게 되는 둥그런 곡자를 이용해 그 궤적을 상상하는 작품을 여럿 펼쳐놓았다. 그 여정에 제주가 고향인 아버지가 딱 한번 그에게 꺼내놓았던 제주4·3의 상처가 어른거린다. 합판 드로잉과 나무 상자로 형상화한 '닿을 수, 닿을 수 없는 섬'에 그같은 남모를 가족사를 실었다.
대학에서 응용미술을 공부한 이진아 작가는 1세대 일러스트레이터로 통한다. 그림책, 음반 표지, 무대세트 제작 등 일러스트를 매개로 여러 작업에 참여해왔다. 특정 분야에 고정되지 않은 채 '완고함'을 부수는 작업이 시작된 배경이다.
전시는 12월 8일까지 계속된다. 비아아트 갤러리는 대동호텔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