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2)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2)
  • 입력 : 2019. 10.03(목) 2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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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 작/고재만 그림

11-4. 삼미동 차이나타운




"취재하면서 놀라지 말아. 애들 엄청 돈 잘 벌어. 여기 애들은 조선족, 한족 등이 많고 가끔 탈북 여성들도 있어."



용찬은 금산이 좋은 두뇌를 이런데 써먹는다고 생각했다.

"그게 불법이에요?"

"사기고 불법이지. 짜고 치는 고스톱이야. 한 사람이 뒤집어쓰고 감방에 가면 그 가족을 나머지가 책임지는 거지. 두고 보면 알겠지만 금산이 저렇게 잔머리 굴리다간 제 명에 못 죽을 걸?"

종필의 얼굴에 드리웠던 회한의 어두운 그림자는 분노로 변했다. 그걸 삭히려는 듯 그는 맥주 컵에 술을 채우더니 벌컥벌컥 마셨다.

"참, 차이나타운 분양은 많이 됐어요?"

"거의 마무리 단계야. 5억 그거 돈 많은 중국인들에겐 껌 값이지. 영주권을 그렇게 헐값에 팔아넘기다니. 그런데 실제 영주권을 탐내는 사람은 몇 안 되고 장사치들이 많아. 열 채 이상 가진 사람들도 있어. 그들은 타운이 완성되면 중국인 상대로 시세차익을 노리고 전매할 거야. 5억 짜리가 50억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것뿐인가. 지금 경치 좋은 해변가나 시내 도심 목 좋은 땅들도 무더기로 사들이고 있어. 제주도 땅값 오른 게 다 그 때문이야."

그의 목소리는 식당 안을 울릴 정도로 컸다. 제주인의 목소리도 중국사람 못지않게 크다. 그것은 침탈의 역사와 바람 많은 자연 환경에 억세게 적응하며 살아온 탓이다.

"일 년에 일억 원 이상 소득을 올리는 중산층이 우리나라 인구 수와 같다는 말 들었어요."

종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서더니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화딱지 나는 얘기 그만하고 우리 몸 풀러 가자. 따라와."

삽화=고재만 화백



용찬은 몸 푸는 걸 운동하러 가자는 줄 알았다. 헌데 그가 데리고 간 곳은 예전 미용실이나 이발소 앞에 걸렸던 빨강, 하양, 파랑 색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등이 걸려있는 곳이었다.

"여기 뭐 하는 곳인데요?"

"이미지 샵이라고 쉽게 말하면 휴게실이야. 여기서 마사지 받고 잠깐 쉬어 가자."

그제야 용찬은 감이 왔다.

"형 이런데 다녀?"

"그럼 어떻게 해. 알다시피 돌아온 총각인데 욕구를 어떻게 풀어? 과붓집은 술값이 많이 들고 해서 여긴 내 단골집이야."

"단골? 자주 와요?"

"주체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해? 요즘 잘 안 서. 발기부전인가 봐. 그런데 그 애는 잘 세우거든."

"형, 섹스 중독 아냐?"

"우리 나이엔 다 왕성할 때 아닌가?

종필은 예전부터 여자를 유난히 밝혔다. 용찬이 서울 구경 가서 해연을 만나게 된 것도 그 덕분이었다. 결혼하고서도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다가 이혼까지 당했다. 참지 못하고 분출해야 직성이 풀리는 종필의 심리가 궁금해졌다.

용찬은 야릇한 분위기에 취기가 올라옴을 느꼈다. 휴게실이란 말은 들어 봤지만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엷은 긴장감에 심장이 나지막이 뛰었다.

"취재하면서 놀라지 말아. 애들 엄청 돈 잘 벌어. 여기 애들은 조선족, 한족 등이 많고 가끔 탈북 여성들도 있어."



"중국 관광객도 있고요, 배 타는 선원들, 장기출장 나온 사람들 대중없어요. 날마다 좋은 건 아니에요. 허탕 치는 언니들도 있지만 전 단골이 있어서 수입에는 크게 지장이 없어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양쪽 벽에는 붉은 조명 아래 벌거벗은 여인들의 도발적인 자태의 사진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용찬의 거시기가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접수대에 앉은 중년 여인이 종필을 아는 듯 반갑게 맞으며 농담까지 했다. 요금을 지불하니 흰 와이셔츠에 나비넥타이를 맨 사내가 탈의실로 안내했다. 가운을 내주며 입고 대기하라고 했다. 잠시 후 가운으로 갈아입은 종필이 웃으며 다가왔다.

"이런 데 처음이야?"

"응. 괜히 긴장되네."

"긴장 풀고 언니 하자는 대로 하면 돼."

곧 벌어질 상황을 상상하자 숨이 가빠지며 아랫도리가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안내했던 사내가 들어왔다.

"한 분 나오세요."

"장유유서. 형 먼저 가."

"아냐, 난 애인이 부를 때까지 기다릴 거야."

이런 곳에서 장유유서를 따진다는 게 우스워 용찬은 사내 뒤를 따라가며 피식거렸다.

"정해 진 45분을 지켜야 합니다. 사정을 못하더라도 타임 오버하면 다시 요금을 내야합니다."

사내는 복도를 따라 걸으며 콘돔 사용 등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했다.

복도 양쪽 방마다 문 앞에는 예쁜 장식이 달린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코코'라고 쓰인 방 앞에서 사내는 멈춰서 노크를 했다. 문이 열리며 속이 비치는 검은색 가운을 걸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사내가 꾸벅 인사하고 사라졌다.

"안녕하세요. 코코입니다."

어색한 억양으로 인사하며 여인이 손을 내밀었다.

늘씬한 키에 가슴이 풍만하고 군살이라곤 없는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는 악수한 용찬의 팔을 끌어서 안으로 들이고는 문을 닫았다. 그리고 말없이 용찬의 가운을 벗겨 옷걸이에 걸었다. 팬티 차림의 용찬이 어색해 하자 여자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처음이신가 봐요?"

용찬은 '응'하고 대답하려 했으나 말은 안 나오고 고개만 끄덕였다.

"긴장 푸시고 재미있게 놀다 가세요."

그녀는 윙크를 하며 가운을 벗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 희미한 조명을 받아 반짝거렸다. 용찬은 숨이 막히는 듯해서 시선을 피하며 방안을 살폈다. 핑크빛 조명 아래 침대가 놓여있고, 주변은 예쁜 장식들로 꾸며져 있었다.

그녀는 용찬의 안절부절 하는 모습이 재미있는지 웃으며 걸어가더니 칸막이를 제쳤다. 샤워 시설과 함께 또 다른 침대가 놓여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침대를 가리켰다. 용찬은 팬티를 벗고 침대로 가 몸을 뉘였다. 등에 닫는 감촉이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했다. 그런데 거시기가 문제였다. 아직 아무런 접촉도 없었는데 그 녀석은 지레 고개를 쳐들고 난리였다. 크게 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어보려 했지만 제어 불능이다. 용찬의 시선이 여자를 찾았다. 그녀는 돌아서서 무언가 조작하고 있었는데 조명을 받은 뒤태에 빛이 미끄러져 내리는 듯 했다. 용찬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잔잔한 음악 소리가 들리더니 또각또각 발자국 소리가 다가왔다.

생각해보니 음악은 들어올 때부터 흘러나온 것 같다. 그런데 용찬은 온통 시각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진하게 흩날리는 향수냄새와 애절한 발라드 노래에 대한 감각 세포가 잠시 마비됐다고 생각했다. 음악은 발라드에서 클래식으로 바뀌었다.

"왜 내가 진지한 사람으로 보이나?"

"눈치 빠르시네. 손님 딱 보고 선곡하는데. 왜 취향 아니에요?"

용찬은 팝송을 좋아하지만 조용하게 흐르는 선율이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 같아 그냥 좋다고 했다.

그녀는 수도꼭지를 틀어서 용찬의 몸을 씻고는 물비누로 구석구석 문질렀다. 용찬은 가만히 눈을 감고 그녀의 손가락이 닿는 촉감을 즐겼다. 그녀의 손길은 목에서 가슴과 배로 정성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부드럽게 움직였다. 겨드랑이에 손길이 닿았을 때 용철은 움찔하면서 기분이 야릇함을 느꼈다. 남자도 성감대가 있구나 생각하는데 맥박이 심하게 뛰고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그녀의 손길이 예민한 부분에 닿고 몇 번 스치는 순간,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머릿속이 아찔해지며 불덩이 같은 것이 몸에서 빠져나갔다. 그녀는 당황한 듯 얼른 일어서서 샤워기를 틀어 용찬의 몸을 닦아냈다. 용찬은 민망하고 자괴스런 생각에 사로잡혀 눈을 뜰 수 없었다. 그런 복잡한 감정을 잊으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긴장하셨나 봐요."

그녀는 용찬에게 수건을 건네고는 밖으로 나갔다.

용찬은 말없이 몸을 닦으며 그녀를 따라 샤워실 밖으로 나왔다. 바이올린의 잔잔한 울림이 용찬의 마음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녀는 용찬의 속옷과 가운을 가지고 왔다. 용찬은 그것들을 걸치며 다시 한 번 숨을 길게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아직 시간 남았으니 얘기나 좀 합시다."

그녀는 시계를 쳐다보고는 침대에 앉으라고 했다. 그녀도 가운을 걸치고 용찬의 곁에 앉았다.

"불법체류자 맞죠?"

용찬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 하시는 분이세요? 나 잡으러 오셨나요?"

용찬은 처지가 역전되었음을 판단하고 억지 미소까지 지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난 기자에요. 결코 신분 상 위해가 없도록 보장할 테니까 몇 가지 묻는 말에만 답해줘요."

그녀는 말없이 용찬의 눈을 한참 살폈다.

"좋아요. 오빠의 순진함을 믿죠."

용찬은 순진하다는 말에 민망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런 용찬의 마음을 아는 듯 생글거리고 있었다.

"여기에 온 지는 얼마나 됐어요?"

"한국 온 것은 3 년 다 되어가고요, 이 일 한 지는 2년쯤 돼요."

"고향은 연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어서서 실내의 조명을 환하게 바꿨다. 화장하지 않은 그녀의 맨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가까이서 바라본 그녀의 얼굴에선 연륜이 묻어났다. 그리고 그녀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신세를 술술 털어놓았다.



"고향에선 돈 벌이가 시원치 못했어요. 게다가 남편이라는 작자는 다른 여자의 꼬임에 빠져 이혼해 버리니, 애 둘을 키워야 하고 친정 부모와 동생들 먹여 살려야 하니 어떡하겠어요. 한국에 가면 돈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주변에 목돈을 빌려 브로커에게 주고 여기 왔어요. 처음에는 식당과 노래방 도우미를 했는데 큰돈이 되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먼저 온 동네 언니를 만났는데 여기를 소개받았죠."

"돈 많이 벌었어요?"

"오빠 낸 돈 중 절반이 내 꺼예요. 많을 때는 하루 열 명 넘게 받을 때도 있으니 한 달 평균 천만 원은 돼요. 한 달 수입이면 우리 동네에선 밭도 사고 집도 살 수 있는 돈이에요. 하지만 이 일이 쉬워 보여도 벗은 몸으로 사람을 상대한다는 게 생각하지 못한 상황들이 자꾸 생기니까 여간 힘들지 않아요. 이제 그만하고 고향에 가려고 해도 돈맛을 알기 때문에 쉽게 접지 못 해요."

"고객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

"중국 관광객도 있고요, 배 타는 선원들, 장기출장 나온 사람들, 혼자 사는 젊은이들 대중없어요. 날마다 좋은 건 아니에요. 허탕 치는 언니들도 있지만 전 단골이 있어서 수입에는 크게 지장이 없어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듯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참 땅 좀 팔아줘요."

용찬은 엉뚱한 소리에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슨 땅?"

"작년 시골에 사뒀는데 이제 서서히 고향 갈 준비해야죠. 지금 많이 올라서 3억은 간다는데......"

그때 시간이 다 되었다는 음악 벨이 울렸다.

<강준 작가 joon44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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