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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9개월 일기에 제주 지방관의 공감능력
1988년 영인 이원조 '탐라록' 30년 만에 3권으로 완역 출간
제주목사로 보고 듣고 행한 일 19세기 제주 사회 촘촘히 기록
제주문화원, 이원조 재임 공문집 '탐영관보록' 후속 번역 예정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9. 02.12. 18: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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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이원조(1792~1871)의 '탐라록(耽羅錄)'이 최근 완역됐다. 1988년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가 발굴해 간행한 약 500쪽 분량 영인본 '탐라록'이 나온지 30년 만이다.

'탐라록'은 이원조가 제주목사로 제수된 1841년 1월 9일부터 1843년 7월 제주를 떠나 8월 고향인 경북 성주로 돌아갈 때까지 2년 9개월에 걸친 주요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원조가 제주에 머무는 동안 보고 듣고 행하였던 일들을 일기로 적어놓았다. 일상의 기록만이 아니라 그날그날 지은 운문과 산문이 한데 서술되어 있다.

마지막 권인 '역주 탐라록 하(下)'는 1842년 11월 21일부터 1843년 8월 27일까지 기록을 담았다. 운문 '유생 오태직의 시 '수선화' 10절에 즈음하여' 등을 통해 이원조가 교유했던 인물상을 확인하게 되고 '시아(侍娥)가 낳은 아들을 두루 보살피지 못하고 돌아갈 때에 임하니 송아지를 핥아주는 사랑이 없을 수 없어 이를 쓴다'는 대목에선 제주목사 당시 제주 여인에게 낳은 아들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산문 '양로연기(養老宴記)'는 18세기 초 이형상 목사에 의해 작성된 '탐라순력도'에 있는 '제주양로' 화폭과 더불어 조선후기 제주에서 행해졌던 향중양로연의 양상을 규명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제주목을 다스렸던 이원조의 '공감능력'을 보여주는 장면도 있다. 5언 장시로 읊은 '탐라십요(耽羅十謠)'와 '여섯 가지 고역을 노래'한 '육고가(六苦歌)'에는 방목, 답전, 제초 등의 풍속과 각종 신역(身役)에 시달리는 제주 사람들의 고통스런 생활상이 그려졌다.

제주문화원에서 나온 '역주 탐라록'은 2016년부터 3년에 걸쳐 상·중·하 3책이 차례로 출간됐다. 번역을 맡은 제주문화원 백종진 사무국장은 "3년간 탐라록은 언제나 나와 함께 했다. 문헌사료가 부족한 제주 지방사의 현실에서 나름 19세기 중반 제주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초 사료 하나를 완역해냈다는 것으로 스스로의 위안을 삼는다"고 했다.

백종진 사무국장은 '탐라록' 완역에 이어 제주문화원 향토사료 발굴 사업으로 이원조 목사가 재임 당시 제주목 4면, 대정현과 정의현, 각 진(鎭)에 하달한 전령(傳令) 등을 수록한 공문 모음집인 '탐영관보록(耽營關報錄)'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벌인다. '역주 탐영관보록'까지 출간되면 19세기 제주사회를 한층 더 상세히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비매품. 문의 064)72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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