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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소감·심사평] 김윤진 '소(沼)'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9. 01.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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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소에서 정말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당신은 물웅덩이를 지켰다. 짙은 녹색의 고양이소처럼 당신의 집은 고양이의 눈처럼 깊고 고요하다.



가만히 있다가도 다이빙하거나 발을 헛디뎌서 누가 그 깊이를 만지면, 털을 바짝 세우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가릉, 하고 울어댔다. 몸을 으스스 떨며 건져 올린 신발의 개수를 일지에 적어넣는 것이 여름 당번의 일. 개학 후 신발의 개수만큼 책상이 비고, 당신이 지키지 못한 동생들은 집을 떠나고



당신은 항상 깊이를 알 수 없어 두근대는 소(沼)에서 산다. 꿈속에 당신의 아비는 칼을 들고 당신을 쫓아오고. 또 하나 당신의 아비는 발목이 부러진 당신을 부축하고. 한 손에는 칼을 들고 한 손은 당신 어깨를 감싸고, 파도가 되었다가 호수가 되었다가 그저 무지개 장화를 신은 아이들의 퐁당거리는 빗물이 되었다가, 당신마저 발을 담그면 세숫대야 물은 심층을 알 수 없었다.

그림=최현진



[시 당선소감] 공기와 불, 물과 대지처럼 가볍고 무겁게

당선자 김윤진

몸과 맘이 아픈 한 해였다. 하지만 제일 즐겁게 몸과 맘으로 외친 한 해가 저물어간다.

생각이 바뀌고 전환점을 마련한다는 것은 무조건 유쾌하다. 올해 초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고향과 유년이라는 코드에 집중하고, 모든 걸 극복하기로 맘먹었다. 글쓰기는 어려울 때마다 밀물과 썰물처럼 내게 왔다 갔다 하는 숨은 힘이었다. 어려운 걸 싫어하고, 끝마무리를 못하는 게으른 루저, 문법에 약하고 감정에도 헤픈 나라는 사람이 글 쓴다는 걸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겠지만, 내 인생은 시종일여 일관되었다고 자부한다.

물과 불, 공기와 대지의 상승 이미지. 대학원 시절 정현종 선생님이 사사하신 가스통 바슐라르의 4원소 총체적 상상력과 역량을 여전히 신뢰한다. 앞으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기와 불처럼, 물과 대지처럼 가볍고 무겁게 살고 그리 글을 쓸 것이다.

생각의 문을 열기위해 어려운 책을 서슴없이 토론하는 가가모임(가치에 대한 가치를 추구 하는 독서회) 동인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감히 금병매를 읽었던 초등생 내게 인생 최초의 무거운 책, 한국 단편소설집을 권해주셨던 아버지, 당신의 힘입니다. 감성을 키워준 내 유년의 낡은 집과 어머니, 당신의 힘입니다. 말없이 지켜봐주는 우리 가족들 너무 사랑합니다.

▷본명 김현희 ▷1971년 제주 서귀포 출생 ▷1994년 서강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1998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수료 ▷제주 거주, 가가모임 동인

[심사평] 시의 펼침에 반전과 도약의 상상력

시인·평론가 장석주, 시인 허영선

2019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응모된 시편은 323명의 작품 1326편이다. 이중에서 최재훈, 최와온, 홍명희, 김윤진, 옥영경, 배경령, 배종영, 진영심, 이정혜, 이교진 씨의 시들이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랐다. 본심에 오른 시편들은 다채로운 상상력과 함께 기대보다 높은 수준이어서 반가웠다. 이들 시편을 읽고 검토한 끝에 김윤진 씨의 '소(沼)'와 진영심 씨의 '재와 보석' 중에서 당선작을 고르기로 결정했다.

진영심 씨의 '재와 보석'이 먼저 심사자의 눈길을 끌었는데, 시의 어조가 활달하고 시의 내공도 상당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시는 레이캬비크에서 시작하는 황금고리 해안선, 디르홀레이 해안가, 요쿤살론 유빙들… 같은 이국의 지명과 유황가스, 화산, 용암, 기암괴석, 만년설, 빙산, 간헐천 이마들… 같은 낯선 풍물 등이 어우러지며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진영심 씨가 펼친 비췻빛으로 물든 시적 공간은 독자의 마음을 잡아 끌며 저 먼 동경의 장소로 데려간다. 하지만 여러 시적 요소가 잘 버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낡은 창법(唱法)이 흠으로 지적되었다. 시적 상상력의 능란함에서도 어딘지 낯익은 기성의 솜씨가 느껴져 신인의 시로 천거하기에는 망설여졌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보기로 하며 시를 내려놓았다.

김윤진 씨의 '소(沼)'는 제주도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 '고양이소(沼)'에 얽힌 슬픈 일화(逸話)를 과장이나 들뜸이 없이 차분한 어조로 빚은 작품이다. 김윤진 씨의 시는 오직 구체적 경험의 범주에서 상상력의 단초를 구하느라 다소 밋밋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유년의 아픈 경험을 장악하는 솜씨가 뛰어나고, 그 슬픔의 질량을 절제된 표현으로 담아낸 것은 숨길 수 없는 재능이다. 웅덩이를 고양이로 바꾸는 활유법에서 시는 돌연 탄력을 얻는데, 이를테면 '누가 그 깊이를 만지면, 털을 바짝 세우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갸릉, 하고 울어댔다'라는 구절을 거쳐 '당신은 항상 깊이를 알 수 없어 두근대는 소(沼)에서 산다'에 이르는 시의 펼침에서 드러난 반전과 도약의 상상력은 분명 남다른 시적 재능이다. 함께 투고한 '태풍', '그 집' 같은 시에서도 좋은 시인이 될 만한 재능을 두루 확인하며 우리는 김윤진 씨의 시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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