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만의 월요논단] 숨이 닿는 곳에서 삶은 고요해진다

[양복만의 월요논단] 숨이 닿는 곳에서 삶은 고요해진다
  • 입력 : 2026. 01.05(월) 01:00  수정 : 2026. 01. 05(월) 07:19
  •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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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새해는 언제나 소리 없이 다가온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아침이지만, 달력 한 장이 넘어간 그 순간 우리는 걸음을 늦춘다. 어디까지 왔는지, 무엇을 향해 걸어왔는지, 지금의 나는 어디에 서 있는지 묻게 되는 순간이다.

그 물음은 오래 머물렀고, 자연스레 한 경험을 떠올리게 했다. 지난해 도민대학에서 진행한 '맨발 걷기와 명상을 통한 마음 챙김' 수업이다. 흙과 모래가 발바닥에 닿는 감각은 잠시였지만, 그 짧은 촉감은 생각보다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머리로만 이해하던 삶이 몸의 감각을 통해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경험이었다.

숲길을 걸을 때 바람은 애써 생각을 풀려하지 않는다. 다만 스쳐 지나가며 자연스럽게 매듭을 느슨하게 만든다. 바닷가의 파도 역시 쉼 없이 밀려온다. 막으려 하면 더 거세지고, 피하려 하면 이미 젖어 있다. 그 앞에서 문득 깨닫는다. 삶의 파도는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지나갈 자리를 내어줘야 할 흐름이라는 사실을.

불교에서는 마음을 '붙잡을 수 없는 것'이라 말한다. 금강경에는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는 구절이 있다.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면서도 삶을 분명하게 살아내라는 뜻이다. 우리는 흔히 마음을 단단히 붙잡으려 애쓰지만, 그럴수록 삶은 더 경직된다. 오히려 붙잡지 않을 때,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닿을 때 삶은 다시 부드러워진다.

우리를 무겁게 만드는 것은 생각의 양이 아니라 속도다. 마음이 지금에 닿지 못할 때, 사소한 근심 하나도 끝없이 증식된다. 법정 스님은 "사람은 분주할수록 자기 삶에서 멀어진다"고 했다. 고요하지 못한 것은 삶이 아니라, 늘 앞서 달려가며 지금을 놓치는 우리의 마음이다. 명상은 비우는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일어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훈련에 가깝다. 판단 이전의 자리에 잠시 머무를 수 있을 때, 우리는 돌아올 수 있는 중심을 얻게 된다. 삶은 여전히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에 휩쓸리지 않는 자리가 마음 안에 생긴다.

삶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밀려온다. 그러나 싸우지 않을 때, 밀어내지 않을 때 우리는 균형을 배운다. 상황이 나를 흔드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 삶의 방향은 내가 무엇에 머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새해의 문턱에서 나는 거창한 다짐 대신 한 번의 깊은숨을 떠올린다. 숨이 머무는 자리를 알아차리는 짧은 순간. 그 작은 자각이 쌓일 때 삶의 결은 서서히 달라진다. 오늘, 지금, 이 숨이 닿는 자리에 잠시 머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나의 속도로 살아도 괜찮다"고 그 숨이 말없이 일러준다. 그렇게 숨을 고른 자리에 말로 다 하지 못한 하루의 감정들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비로소 나는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다시 알아차린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 이 시간 속에서, 숨은 깊이를 되찾는다. <양복만 제주맨발학교장·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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