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하기 좋은 섬 찾아온 한국무용가 박연술 [제주愛]

예술하기 좋은 섬 찾아온 한국무용가 박연술 [제주愛]
[2025 제주愛빠지다 / 제주 이주 N년차 이야기] (15)한국무용가 박연술 씨
"제주가 예술하기 좋은 이유, 백만개 넘어"
남영호 유가족… 제주서 아픈 영혼 위로하는 살풀이
“신화 소재 하나로도 공연 가능한데 제주 1만8000신”
“영감 얻기 좋지만 예술가 성장하기엔 인프라 한계”
  • 입력 : 2025. 10.22(수) 03:00
  • 이상민 기자 has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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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한국무용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박연술 씨.

[한라일보] "아버지를 꼭 찾아뵈어라."

제주에서 살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아버지 이야기부터 꺼냈다. 아버지는 1970년 12월 14일 남영호와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생을 달리했다. 남영호 사무장이었던 아버지는 사고가 나자 구명조끼를 나눠주며 승객들을 구출하다 정작 자신은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2013년 1월 박연술(56)씨는 어머니 말씀대로 아버지를 찾아갔다. 서귀포시 상효동 돈내코 외진 곳에 있는 남영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그는 처음으로 아버지와 마주했다. 그해 12월쯤 남영호 추모비를 서귀포항으로 옮긴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선 다시 한번 그곳을 찾아 살풀이를 하며 아버지와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박 씨는 한국무용가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5살 때 처음 무용을 접했다. 이후 서울예고와 숙명여대를 거쳐 무용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서울에서 무용으로 줄곧 삶을 이어오던 박 씨가 돌연 제주행을 택한 것은 아이들 교육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뛰어놀며 자유 분방하게 커야 하는데 고층 건물에 둘러싸인 서울에선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파트에 살던 그는 아이들이 집에서조차 마음대로 뛰어다니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는 제주로 이주하고 수개월 간은 무용을 제쳐두고 아이들과 함께 오름과 바다를 돌아다녔다.

제주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무용을 하는 그녀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삶의 터전이자 예술의 터전이었다.

그는 "제주에서 예술하기 좋은 이유를 꼽으라면 백만 스물한 가지라도 댈 수 있다"며 "무엇보다 제주는 1만8000여 신이 있는 신들의 나라이지 않느냐. 신화 하나로도 공연을 할 수 있다. 그럼 제주에서는 1만8000여 개의 공연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니 여기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전했다.

그가 하는 살풀이는 아픈 영혼을 위로하는 춤이다. 그는 춤으로 위로할 수 있다면 제주 어디든 찾아갔다. 제주4·3학살터, 세월호의 목적지였던 제주항에서 그는 살풀이를 했다.

박 씨는 "한번은 제주시 노형동주민센터 앞에서 열린 4·3위령제에서 살풀이를 했는데, 소름이 끼쳤다"며 "이 시내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했다니… 돌아가신 분은 얼굴을 알 수 없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분들이라도 제 춤을 보고 위로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살풀이를 했던 기억이 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 씨는 도내 초등학교에서 예술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박 씨는 "단순히 율동을 학습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음악에 맞춰 표현하고, 창작을 할 수 있게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몸이 움직이면 머리와 마음이 움직이고, 사회성과 교우관계도 향상된다. 그런 것들을 교육에 접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아이들이 예술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교육적 인프라가 제주에 턱없이 부족해 아쉽다고 했다. 그는 "제주에는 예술고등학교가 없고, 무용학과를 운영하는 도내 대학교도 없다"며 "제주는 예술적인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로 성장하려면 다른 곳으로 진학해야 한다. 아이러니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제주 이주를 꿈꾸는 예술가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아무리 명망 있고 학식 높은 예술가라도 주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발붙여 예술을 할 수 없는데 그들의 마음을 얻으려면 우선 제주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박 씨는 "제주에 어떤 신들이 있는지, 각 마을의 해녀 문화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하다못해 제주는 어떤 지형인지라도 미리 알고 와야 한다"며 "그래야 제주에 스며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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