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번개를 보는 듯한 느낌과 함께 갑작스런 시각의 일부 상실을 호소할 때, 안과의사들은 우선 후유리체 박리와 그 합병증인 망막 열공(망막에 찢어진 틈이 생기는 것)·망막 박리를 떠올린다. 구석구석 망막을 살폈는데 문제가 없다면? 의사들은 확인한다. "번쩍거린 걸 보신 뒤 머리가 아프지 않으세요?"
편두통은 전 세계적으로 연간 약 14-15%가 겪는 흔한 신경학적 질환이다. 특히 여성 환자가 많고 호르몬 변동이 통증 경로와 신경 전달에 영향을 준다. 이 편두통에 안과 증상이 끼어들 때가 종종 있다. 눈에는 이상이 없지만, 시각적인 증상은 반복될 때, 오라(aura)라는 이름으로 이 상황을 설명한다. 번쩍이는 빛, 지그재그 선, 시야가 일부 비는 현상이 서서히 시작해 몇 분에 걸쳐 퍼졌다가 5-60분 내 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대개 양쪽 눈에서 같은 방식으로 느껴지므로 한 쪽씩 가려 봐도 차이가 없다. 눈이 아니라 뇌의 시각 피질에서 문제가 비롯되기 때문이다.
물론 안과 질환을 의심해 병원으로 달려오는 건 백 번 잘하는 일이다. 후유리체 박리는 초기에는 유리체가 망막을 잡아당기며 번쩍임과 비문증을 일으킨다. 동반 소견과 병력에 따라 망막이 찢어졌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며, '갑자기 커튼이 내려오듯' 고정된 시야 가림이 생기는 경우 아예 망막이 떨어져 나갔을 수도 있다. 한쪽 눈에서만 시력이 떨어졌다가 수십분 후 회복되는 경우엔 혈관성 질환을 의심할 수 있다.
편두통은 단순히 혈관이 수축됐다가 확장돼서 아프다고만 설명하기 어렵다. 뇌의 통증회로인 뇌간-삼차 신경-경막 혈관의 삼차 혈관계가 활성화되고, CGRP 같은 신경 펩타이드 물질이 방출돼 통증과 과민감을 증폭시킨다. 욱신욱신 박자에 맞춰 아픈 통증에 구역·구토, 빛·소리 과민까지 동반되면 그야말로 고통스럽다. 환자들이 "턱까지 욱신거린다", "빛이 눈을 찌른다"고 표현하는 것은 엄살이 아니다.
급성 편두통이 발현됐을 때는 일반적인 진통제부터 복합 진통제, 트립탄 계열, 아편성 진통제까지 사용하지만 재발이 잦다. 재발과 편두통의 강도가 심한 경우 예방 치료가 필요하다. 베타 차단제, 칼슘통로 차단제, 항경련제, 항우울제 같은 전통 약물들이 있고, CGRP 표적 항체를 쓸 수도 있다. 한 달에 보름 이상 아픈 만성 편두통이라면 보톡스를 사용하기도 한다. 수면·카페인·식사·빛·향·스트레스 등 유발 요인을 찾아 조정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핵심은 증상의 빠른 파악과 예방이다. 한쪽 눈인지 양쪽 눈인지, 갑작스러운지 천천히 진행되는지만 우선 판단해도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두 눈에 똑같이 발생하고 서서히 진행되며 완전히 회복되는 경우는 편두통 연계 질환에 가까우며, 한쪽 눈에서 갑작스럽게 발생하고 커튼이 쳐지는 것 같은 시각 증상이 생긴다면 안과 질환일 가능성이 높다. 편두통과 안과적 증상의 관계가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아 많은 설명을 할애했지만, 눈이 안보일 때 안과를 찾는 건 옳은 선택이 될 수 있다. <김연덕 제주성모안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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