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나는 아주 힘든 일을 겪었어." 라고 누군가 어렵게 말을 꺼낸다면 그 말은 아마도 거대한 덩어리 의 모양을 하고 있을 것이다. 뜨겁고 축축하게, 외롭고 아프게 그 사람의 몸과 마음 속 어딘가에 머물던. 그것을 마주하면 "내게 그 말을 해줘서 고마워" 라고 조심스럽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타인의 응어리를, 덩어리를 마주하는 일은 내 그것을 보는 것 만큼이나 어렵고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우리 둘 사이에 그렇게 무언가 예측하지 못한 감정의 크기가, 시간의 무게가 놓이는 순간이 온다. 다가설 것인가, 만져볼 용기가 있는가, 마음의 쓰다듬음을 내 손으로 옮겨올 자신이 있는가. 무수한 타인들이 서로를 건너 우리가 되기 위해서는 이 과정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는 모르지 않는다. 서둘러 두 번째 대답을 준비해야 하는데, 우물쭈물 하다 보면 그 덩어리는 다시 저 이의 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 같은데 도무지 어떻게 말을 이어가야 좋을 지, 맞을 지, 옳을 지 모르겠다. 그래도 눈을 마주보면 그 마음이 보일 것도 같아서 시선을 피하지 않기로 한다. 천천히 몸을 움직여 손을 내밀어 본다. 덩어리 위에 내 손을 조심스레 얹는다. 그렇게 두 번째 대답을 시작한다.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더 듣겠습니다. 내 마음으로 듣겠습니다. 그렇게 당신의 세계와 대화하겠습니다. <세계의 주인>은 타인의 고통에 대답하는 영화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마음으로.
윤가은 감독의 신작 <세계의 주인>은 씩씩한 주인공 이주인(서수빈)의 시끌법적한 일상으로 초반부를 채운다. <우리들>과 <우리집>을 통해 10대 초반 여성들을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그린 윤가은 감독의 세 번째 주인공은 10대 후반의 이주인이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주인과 남자친구의 꽤 진한 키스 장면을 보여준다.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10대 여성의 성과 사랑이라는 소재에서 정면 승부 하는 모양새다. 피할 것도 에둘러 돌아갈 필요도 없다는 선언처럼. 학교 생활도 마찬가지다 주인의 단짝 친구들은 생기 넘치는 에너지로 주인의 세계와 발을 맞춘다. 춤을 추고 공을 던지며 웃고 떠든다. 무엇이 되는 것보다는 지금에 있는 것이 중요한 시기. 그 세계는 잘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주인의 집으로 들어선 세계는 좀 다른 느낌을 준다. 엄마와 동생 그리고 주인까지 세 사람이 살고 있는 그 공간은 평범하고 단란한 가족으로 보이는데 집안 곳곳에 단정하지 못한 흔적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떤 영문인지 주인의 엄마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술을 마시고 꽂아 놓은 꽃들은 관리하지 못해 화병 안에서 시든 채로 남겨져 있다. 엄마가 남긴 토사물의 흔적을 바지런히 치우는 것도 주인과 동생 해인의 몫이다. 주인의 동생 해인은 아토피를 앓고 있는데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침대 밑에 그가 꽤 오래 숨겨둔 편지 뭉치가 숨겨져 있다. 또한 해인은 마술을 연습한다. 아직은 좀 서툰데 마술에 진심인 친구다. 마술로 꼭 무언가를 해내고 싶은 것 같다. 학교와 집을 지나 주인이 다다른 곳은 봉사 활동을 하는 동아리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곳에서 주인은 씩씩한 막내다. 무언가로 엮여져 있을 이들은 서로에게 살뜰한 사이로 같이 음식을 먹고 봉사 활동을 하며 일상을 공유한다. 여기에는 주인과 함께 태권도장이라는 공간을 공유한 각별한 사이인 미도 언니(고민시)가 있다. 둘은 이 무리 중에서도 유난히 각별해 보인다. 서로를 의지하는 사이로 느껴지는데 친구들이나 가족보다 더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중반부가 지나서야 주인이 겪은 지난 날의 상처를 조심스레 꺼내 놓는다. 가까운 타인이 가한 폭력이 남긴 상처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주인의 세계는 그 상처로 인해 아물지 못한 구석이 남아 있다.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가까운 타인들에게 그 상처가 밝혀진다. <세계의 주인>은 이 사건을 반전으로 쓰지 않고 질문으로 쓰는 영화다. 윤가은 감독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아 보지 말고 주인의 세계를 만나기를 간곡히 청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탁월한 해석이나 동일한 정답을 원하는 영화가 아니기에.
<세계의 주인>은 말을 아끼는 영화다. 그렇다고 마음을 아끼지는 않는다. 남김 없이 쓰고 다시 채운다. 이 세계의 작동 원리는 그 순환으로 보인다.
<세계의 주인>은 딱지로 남은, 흔적으로 새겨진, 결코 낙인이 되어서는 안될 상처의 모양을 애써 들여다 보고자 하는 영화다. 그리고 주인의 세계와 함께한 이들에게 그 상처의 모양을 대면한 뒤 각자의 대답을 위한 시간을 청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주인은 말 못 할 비밀을 간직한 사람이 아니라 덧나는 상처 위를 삶이라는 박동으로 성큼성큼 닦고 걷는 사람이다. 인과관계의 해석만으로 완성되지 않을 한 사람의 온전한 지금과 희망으로 써내려 갈 다음이 <세계의 주인>속에 있다. 어떤 세계 속에서도 나의 주인이자 서로의 증인으로 살아가자고 이토록 뜨거운 손의 온도로 악수를 청하는 영화라니 꽉 안아 버릴 수 밖에. 위로와 용기, 희망과 사랑이라는 어쩌면 환상에 가까워 보이던 말들이 놀랍도록 생생하고 두툼한 부피로 윤가은의 세계를 이불 솜처럼 채우고 있다. 이 놀라운 따뜻함이 어떤 정성으로 바느질 되어 있는지를 부디 스크린을 통해 마주하기를 바란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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