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의 한라시론] 제주가 지켜야 할 부속섬 어르신들의 삶

[김재희의 한라시론] 제주가 지켜야 할 부속섬 어르신들의 삶
  • 입력 : 2025. 09.18(목) 01:30  수정 : 2025. 09. 18(목) 06:45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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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올해 8월, 연구 조사를 위해 추자도·우도·가파도·비양도·마라도 다섯 개 부속섬을 방문했다. 어느 경로당에서 만난 한 어르신께 여쭸다. "섬에는 병원도 없고, 생활도 불편한데 자녀가 있는 본섬에서 사시는 게 더 나으시지 않으신가요?" 그러자 어르신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여기가 고향인데 어디로 가? 고향에서 살아야지." 그 순간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을 했는지 깨달았다.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고향이나 지역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한다. 이는 원래 살던 지역에서 계속 거주하며 노후를 보내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제주의 어느 지역에 살든, 어르신들이 고향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우리 사회의 몫이다.

그러나 부속섬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의료시설 이용 시 접근성이 크게 떨어져 어르신들은 물리치료를 받고 만성질환을 관리하기 위해 배를 타고 병원에 가야 한다.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도 부족하다. 섬 안에서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은 제한적이고, 배차 간격도 길어 이용이 불편하다. 생활물가는 본섬보다 높아 경제적 부담이 크다. 또한, 기상 악화로 배 운항이 중단되면 물자 공급이 막히고 섬 전체가 고립되기도 한다. 최근 젊은 세대가 떠나버린 마을에서 이웃끼리 서로 챙겨주며 의지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고령화가 더욱 빨라지면서 공동체의 힘도 점점 약해지고 있다.

이 같은 여건 속에서도 부속섬 어르신들이 편안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 정기적인 방문진료와 원격의료를 강화해 본섬에 가지 않고도 기본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마을 거점센터나 공동식사 프로그램 같은 공동체 기반 돌봄은 사회적 고립을 줄이는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분들의 삶을 불편한 현실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섬의 역사와 문화를 지켜온 주역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필요하다. 부속섬 어르신들은 공동체 정신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인이며, 제주가 지켜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섬 속의 섬에 사는 어르신들 역시 제주 공동체를 지탱하는 소중한 구성원이다. 바다 건너 부속섬 어르신들이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이들의 삶에 더 따뜻한 눈길과 관심을 보내야 한다. 그곳의 노년이 건강해야 제주 전체가 건강해질 수 있다. 부속섬 어르신들이 "불편한 삶"이 아니라 "행복한 고향살이"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주를 지키는 길이자, 제주가 품어야 할 미래다.

섬 지역을 다녀오고 몇 주가 지난 어느 주말, 어르신 한 분께 전화를 받았다. 멀리 섬까지 직접 찾아와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너무나 고맙다는 인사였다. 그 따뜻한 목소리와 감사의 말을 떠올리며, 부속섬 어르신들의 삶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속섬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고향살이가 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꿈꿔본다. <김재희 제주연구원 고령사회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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