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반려'는 생각보다 더 아름다운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다. '짝이 되는 동무'라는.
짝만 찾으면 만사형통이라는 말은 비단 연애 관계에만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혼자여도 괜찮다는 말은 혼자임을 인지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한데 그것은 일정 부분 감당의 감각이기도 하다. 나는 나를 감당하고 감내해야 한다는 것. 나를 온전히 책임진다는 '일인분의 삶'은 생각보다 마음이 고된 일이라는 것을 둘일 때는 잘 알기 어렵다. 외로움을 친구 삼는 일은 생의 고독을 배우는 필수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리움이 무엇인지를 더 잘 알게 되는 수행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움은 실체로 드러나기 전에도 실재하는 감정이다. 암흑 속을 더듬는 손의 모양이고 거리를 가늠할 수 없음에도 만지고 싶은 기분의 형태이다. 외로움에 지치는 길고 긴 엇갈림과 포기의 끝에는 기적처럼 그리움의 실체와 닿는 순간이 오는데 오래도록 고독을 벗 삼은 이들에게도 이 순간은 강렬하다. 생의 반려를 만나는 일이 그렇게 온다. 기적을 믿지 않는 이에게도 마치 빛의 기척처럼.
올 여름 극장가에 나란히 걸린 [드래곤 길들이기]와 [릴로 앤 스티치]는 큰 히트를 거둔 애니메이션을 실사화 한 작품들이다. 두 작품 모두 외로운 인간이 반려 동물을 만나는 이야기다.
외딴 섬에 사는 외톨이 바이킹 소년 히컵은 죽여야 할 드래곤과 맞닥뜨리고 휴양섬에 사는 어린 소녀 릴로는 외계에서 온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의 보호자가 된다. 소년과 소녀 모두 홀로의 삶에 익숙해져 가던 즈음의 마주침이다. 소년과 소녀가 외로운 이유는 엇비슷하다. 또래 집단에서 요구되는 정상성에서 벗어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생활을 위협하는 드래곤들에 맞서는 전사가 되기를 요구 받는 소년 히컵은 체력과 성품 등에서 여러모로 약체로 취급 받는다. 사고로 부모를 잃고 언니와 함께 사는 소녀 릴로는 자유라는 감각에 탁월하지만 외로움과의 싸움에서는 승산이 없음을 너무 일찍 알아 버렸다. 히컵과 릴로는 그렇게 각기 다른 섬에서 일찌감치 홀로라는 이름의 섬으로 살아갈 채비를 한다. 투슬리스와 스티치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드래곤 나이트 퓨리가 '투슬리스'가 되고 외계 생명체 626이 '스티치'로 호명 되는 건 그들이 히컵과 릴로와 만났기 때문이다. 미지와의 조우는 늘 우리라는 단계의 코 앞에 있는 풍경이다. 풍경은 예측할 수 없는 호명으로 인해 세차게 흔들리고 이름을 떠올리고 이름을 붙이고 이름을 부르고 그 목소리에 반응하는 행위는 풍경화 속에 존재들을 그려 넣는 등장의 붓질이 된다. 자 마침내 멈춰 있던 시간 속에 우리가 입장했다. 나는 너를 만나기 전 까지의 나와는 다르다는 걸 히컵과 투슬리스, 릴로와 스티치 모두가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 나와 너의 방황은 우리의 모험이 되고 홀로 삼켰던 너와 나의 슬픔에는 우리의 어깨를 내어준다는 것. [드래곤 길들이기]와 [릴로 앤 스티치]는 '짝이 되는 동무'를 만난 존재들이 얼만큼 높이 비상하고 얼마나 멀리 뛰어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성장 영화의 클래식이 될 조건을 두루 갖춘 작품들이다.
나에게도 이름을 붙여주었고 그 이름을 부르면 목소리와 몸짓으로 내 곁에 다가오는 반려 동물들이 있다. 우리가 함께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되어 가는데 나는 영원히 그들의 얼굴 한 가운데 ,촉촉하던 코 근처에 내 손이 닿던 감각을 잊지 못한다. 아주 조심스럽고 서툴지만 진지했던 그 접촉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종이라는 강과 언어라는 벽이 우리 사이에 있다는 것은 이제 허들이 되지 않는다. 내가 그 허들 앞에서 어찌할 줄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나의 반려 동물들은 풀쩍 그 허들을 넘거나 슬며시 허들 아래로 기어와 기꺼이 곁을 내주었다. 짝이 되는 동무는 그렇게 거리의 감각을 새롭게 정의하는 존재들이다. 상처의 흔적을 공유하면서 더 높이 비상하는 히컵과 투슬리스처럼 새롭게 정의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닻을 내리고 돛을 펄럭이며 유영하는 릴로와 스티치처럼 이 세계와 세계 너머에는 수많은 반려의 가능성들이 미지로 남아 있을 것을 안다. 그 미지와의 조우를 꿈 꾸는 이들에게 꿈을 현실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손을 내미는 것이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두려움을 뚫고 나온 손은 분명한 반짝임의 형체로 누군가의 고독을 깨우는 기척이 된다는 것을 더 많이 이들이 경험해 보기를 바란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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