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제주愛 빠지다] (21) '로컬 파인더' 안주희 씨

[2023 제주愛 빠지다] (21) '로컬 파인더' 안주희 씨
"제주서 나 찾는 여행… 그래서 '열일'할 수 있었죠" [제주愛]
두 아이 '열린 교육' 바람에 구좌 세화 정착
좋아하는 것 발견하며 연이어 새로운 도전
  • 입력 : 2023. 10.23(월) 14:01  수정 : 2023. 10. 25(수) 11:29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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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7년 차인 안주희 씨는 "지금까지 제주에 살 수 있었던 것은 제주의 환경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제주'는 자신을 찾고, 뭐든 새롭게 도전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신비비안나 기자

제주 감귤, 당근 등 담은 식품 생산·판매
"좋은 농부·농산물·기업 알리는 일 할 것"


[한라일보] '로컬 파인더'. 제주 이주 7년 차인 안주희(43) 씨는 자기소개처럼 이름 앞에 이 단어를 붙였다. "제주의 마을이 재밌어서 막 배우고 있다"는 주희 씨는 "돋보기를 들고 뭐가 없을까 찾고 있다"며 웃었다.

|"두 아이와 온 제주, 마음 편했지만…"

그가 서울에서 제주로 내려온 것은 두 아이 때문이었다. 시골마을인 외가에 머물렀던 어린 시절 기억이 생생했던 주희 씨는 아이들도 자연 속에서 열린 교육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마음을 굳혔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제주 이주 붐이 한창이던 2017년, 구좌읍 세화리에도 살 집을 찾기 어려웠다. 동네 '삼춘'들에게 물어물어 간신히 방 한 칸에 부엌이 달린 곳을 구했다. 주희 씨는 "문을 활짝 열면 당근 밭이 쫙 보이는 진짜 시골집이었다"며 "그 순간 마음이 되게 편안했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딱 몇 시간이었다. 집 정리를 마치니 불현듯 걱정이 올라왔다. '여기에서 살 수 있을까'. 주희 씨는 "정말 편의시설이 별로 없었다"면서 "오후 6시 이후엔 근처 식당도 모두 닫아 아이들과 밥을 먹으려 1시간 거리인 시내까지 가곤 했다"고 말했다. 겨울이었던 이주 당시에 여름 옷 이삿짐을 풀지 않고 쌓아둔 것도 언제든 떠날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진입 장벽 낮은 제주… 도전 가능한 곳"

그랬던 주희 씨의 제주 살이는 계속되고 있다. 이주 첫 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가 벌써 중학생이 됐다. 그는 "지금까지 제주에 살 수 있었던 것은 제주의 환경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환경은 단순히 '자연'이 아니다. 주희 씨에게 제주는 자신을 찾고, 뭐든 새롭게 도전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제주에 오기 전에 '퍼스널 트레이너'로 쉼 없이 일했다는 주희 씨는 "제주에서도 가능한 일이었지만 제주에서까지 같은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면서 "이주 6개월간은 나를 찾는 여행을 했다"고 말했다.

동네 바다를 걷고 책을 읽는 시간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게 했다. 잇따라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계기도 됐다. 해변을 걸으며 눈에 들어온 조개껍질을 활용해 아이들이 만들기 할 수 있는 상품을 제작해 플리마켓에 나가 보고, 두 아이 먹거리에 대한 관심을 살려 유기농 반찬을 만들어 지역 카페와 협업해 판매해 보기도 했다. 전문 분야를 살려 PT 스튜디오를 운영하기도 했다는 주희 씨는 "(서울에 비해) 상당히 적은 금액으로 마을 안에 좋은 공간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주 이주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저는 '웰컴'(welcome)이라고 해요. 그동안 본인이 생각해 온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이미 제가 경험했으니까요. (다른 지역에 비해) 진입 장벽이 낮아 일단 시작해 볼 수 있어요."

안주희 씨는 재작년부터 '열일체인지'를 열고 제주의 원물을 활용해 식품을 만드는 일에 도전하고 있다. 신비비안나 기자

|"지속 가능한 삶에 영향 주고 싶어"

재작년부터 주희 씨는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있다. 제주의 원물을 활용해 간편하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식품을 만드는 일이다. 2021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청년창업사관학교'를 통해 지원을 받아 식품 제조업체인 '열일체인지'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제주산 비트, 당근, 감귤 등을 넣은 단백질바를 비롯해 그래놀라를 선보였다. 지금까지 개발·생산된 제품은 '옵트그래놀라'라는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먹거리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속 가능한 라이프 스타일에 영향을 주고 싶다"고 주희 씨는 말했다. 그가 제주에서 '로컬 파인더'를 자처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제주의 원물을 이용해 제품을 만들다 보니 다품종, 소량으로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와 제주의 토종 콩처럼 사라져 가는 작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지키고 싶기도 하고요. '그런 일에 제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오지랖에 '로컬 파인더'로 활동해야겠다 싶었죠. 제주 안에는 정말 좋은 기업이, 좋은 농부가, 좋은 농산물이 있어요. 저는 계속 이걸 알리고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제주 이주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주희 씨는 "가장 중요한 건 마음가짐인 것 같다"고 했다. "사실 저도 할 게 없이 제주에 왔어요. 여기에선 트레이너를 할 생각이 없었고, 새로운 일을 찾고 싶었으니까요. 제주에서 나를 찾으며 정신적인 면이 올라가니까 삶의 질이 달라지더라고요.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사고의 확장성이 더 발현됐던 것 같아요. 경제적으로 욕심이 있는 게 아니라면, 어떤 직업이 아닌 나를 찾는다고 생각하고 와도 저절로 길은 열려요. 좋아하는 것이 뭔지를 찾으면서 계속 도전해 볼 수 있고요. 저처럼요. 그러니 용기를 내세요. 정 아니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면 되지만, 아마도 그게 힘드실 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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