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용의 목요담론] 사람의 정수리 그리고 제주의 숨골

[이성용의 목요담론] 사람의 정수리 그리고 제주의 숨골
  • 입력 : 2022. 08.11(목)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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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아기들은 언제 보아도 신비롭고 사랑스러운 존재이다. 어릴 적 어머니가 하신 말씀 중에서 어린 동생이 귀엽다고 함부로 머리를 만지지 못하게 했는데, 특히 정수리는 아기들이 숨을 쉴 수 있는 숨골이 자리 잡고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때는 숨골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몰랐는데 지금에야 찾아보니 숨골은 보통 아기들 머리에서 숨구멍이라고 말하는 부분이었고, 의학적으로 대천문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머리뼈는 통으로 한 개의 머리뼈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머리뼈로 짜 맞춰져 있고, 숨골은 여러 개의 뼈로 이뤄져 닫히지 않은 부위로 머릿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에 해당하는데, 대천문은 생후 4∼6개월까지 커지다가 14∼18개월쯤에 닫힌다고 한다.

사람 머리에서 숨골은 현재 제주 전역에 산재하고 있는 숨골과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제주지역에 산재하고 있는 숨골에 대해 관련 전문가들은 200여 개로 추측하고 있지만, 추측일 뿐 정확한 조사로 규명된 바는 없다. 제주의 숨골은 지하수 함양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초지와 농경지, 오름 등에도 숨골은 존재하고 이곳을 통해 많은 양의 물이 흘러 들어가는데, 지질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숨골은 제주가 형성될 때 자연스럽게 탄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이 조사하고 공급하는 수치지도 지형지물 표준코드에서 동굴 입구는 수치 지도상에서 표준코드로 등록돼 있지만, 숨골은 반영돼 있지 않고 지형 중 등고선에 별도의 구분 없이 표현될 뿐이어서 정확한 개수와 위치가 규명되지 못하다 보니 지형 등고선에 표현되면서 함몰돼 보이는 구간이 제주의 숨골이라고 볼 수 있다.

수치지도는 현황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 도면에 반영하고 있으므로, 제주에서 국토정보지리원에 공식적으로 숨골을 지형지물 표준코드로 추가해 달라고 요청하도록 하자. 많은 경험과 숙련된 노하우를 가진 국토정보지리원이라면 제주지역 수치지도에 숨골 포함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제주지역에 몇 개의 숨골이 존재하며 위치는 어디이고 규모가 얼마인지 규명되고 나면 제주의 정수리에 해당하는 숨골의 보전 및 관리도 용이해질 것이다. 또한 제주의 지하수 정책과 연계시켜 숨골이 지하수 오염 통로가 되지 않도록 방지하고, 자연스럽게 빗물이나 눈이 스며드는 공간이자 제주의 지질 특성을 보고 체험하는 곳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제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수려한 자연환경을 가진 큰 장점이 있으므로 지역적 가치와 숨골의 특성을 고려한 후 관리하여 숨골의 독특함을 살릴 필요가 있다. 아기들 머리에서 숨골이 중요한 부분인 것처럼 제주지역의 숨골은 아기의 숨 쉬는 공간과 다르지 않다. 제주의 자연과 사람들은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없지 않을까? <이성용 제주연구원 연구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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