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제주살이] (20)그럼 제주에서 뭘 먹어?

[황학주의 제주살이] (20)그럼 제주에서 뭘 먹어?
  • 입력 : 2022. 01.25(화)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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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 손님이 오면 회 아니면 흑돼지를 먹으러 가자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오해가 있다. 그들은 제주에 사는 내가 늘 회나 흑돼지를 먹고 사는 줄 안다. 나는 회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며, 대신 소라나 해삼, 멍게를 먹는다. 흑돼지는 흑돼지 살코기보다 껍데기를 먹고 싶어 껍데기를 서비스로 주는 흑돼지 집에 가거나, 흑돼지 뒷다리로 만든 하몬을 술안주로 즐기는 정도이다. 아니, 그럼 제주에서 뭘 먹고 살아? 하고 육지 사람들은 묻는다.

나는 항상 내가 먹는 것을 먹는다. 생존과 연관된 것인데 어찌 먹는 것을 소홀히 하겠는가. 아침은 생식이다. 30년 동안 내 아침 밥상은 생식 한 봉지이고, 그게 전부이다. 자연과 가까운 음식이랄 수 있는데, 나는 식재료 수십 가지가 한데 들어 있는 생식 제품을 하루 한 컵 두유에 타 먹어 왔다. 그렇다고 내가 채식주의 섭식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햄버거 먹을 바엔 막걸리 마시는 게 낫다고 여기는 것은 순전히 내 식생활 취향일 뿐이다.

점심은 대개 아내가 차려주는 것을 먹는다. 아내는 간편 요리의 대가이다. 종일 그림 작업에 매달려야 하는 사람이라 몸에 좋은 것을 간편하게 차릴 수 있는 일종의 '우리집 패스트 푸드'를 늘 생각해 낸다. 말하자면 빨리 먹을 수 있되 건강한 음식으로 승부를 본다는 태도인데, 그런 점에선 나와 닮아 있다. 가령 음식으로 먹을 수 있는 뿌리, 잎, 줄기, 열매까지 통째로 들어가는 비빔밥을 만들거나 양념이 덜 들어가는 맑은국을 얼른 끓여내는 것이 대체로 아내의 요리 스타일이다. 원래 사람의 소화기관은 채식동물과 유사하대, 라고 아내는 말한다. 이하 동문이다.

저녁은 드디어 내가 주도권을 잡는 시간이다. 나는 전통 음식의 맛과 향에 익숙한 세대이기에 나물이나 탕, 국물 있는 요리를 선호한다. 햇고사리와 대파를 이용한 육개장, 토란탕, 산나물밥, 얼큰한 한우 술밥 등이 나의 주특기이다. 저녁 외식 코스로는 질 좋은 육회를 먹을 수 있는 대흘리 식당, 함덕에 있는 보말미역국 집, 봉개동 기사식당 등이 있고, 막걸리에 생무와 김치만을 주는 마을 뒷골목 할망 가게가 있다. 이래저래 우리는 항노화 에너지를 분출하는 제주 바다와 한라산에서 취한 식재료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나이 들고 몸이 늙어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속도는 조절이 가능하다. 불로초는 사랑이라는 풀이고, 연인이란 음식을 서로 나누는 사이라고 했다. 사람은 잘 먹어야 산다. 암환자들이 사실상 영양실조로 죽는다거나, 건강하려면 의사보다 요리사를 찾으라는 말을 되새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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