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111) 제주시 한림읍 월림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111) 제주시 한림읍 월림리
제주다움을 지키는 마을… 주민 스스로 제주어 보전에 나서다
  • 입력 : 2016. 11.22(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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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림사거리 부근 주거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한 마을 풍경(위)과 마을회관 옥상에서 남서쪽 저지오름과 조수리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아래).

제주 대표 분지마을… 산북지역서 감귤 품질 좋기로 유명
마을이미지에 큰 영향 준 '봉곶물곶' 속 특이한 목축문화
제주어 마을 사업 추진… "마을공동체, 제주 정체성 특화"



부지런한 부자들의 흥얼거리는 콧노래 소리가 대대로 끊이지 않아서 원래 이름은 音富里(음부리)다. 204㏊나 되는 기름진 옥토에 근면 성실을 자산으로 가지고 있었으니 부촌으로 일컬어졌던 것. 제주의 대표적인 분지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마을 범위 내에 오름이 하나도 없지만 주변 마을에 있는 느지리오름을 시작으로 시계방향으로 밝은오름, 마중오름, 저지오름, 마오름, 널개오름이 높은 지대를 형성하고 있느니 완만하게 지세가 낮아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러한 풍토적 요인을 기반으로 산북 지역에서 감귤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감귤과수원으로 둘러쳐진 마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자부심에서 마을 슬로건도 '감귤향이 머무는 살고싶은 월림리'라고 했다. 김성담(84) 전 향장이 설명하는 설촌의 역사는 하나의 전설 형태를 가지고 있다. "약 270년 전, 아랫마을 금능리에 살던 고혜한이라는 분이 어느 해에 가뭄이 들어 온갖 곡식이 말라 죽어가고 식량은 떨어져서 처자식이 굶고 있는 것을 보다 못해 중산간으로 올라가 사냥이라도 해서 끼니를 삼으려고 떠났으나 짐승을 잡지 못하고 맥없이 집으로 향하다가 움부리라고 하는 큰 못에 이르러 목을 축인 후 물가에서 잠이 들었지요.

마을의 발원지이기도 한 물거리못은 원래 800평이 넘는 규모를 가진 연못이었다.

시간이 흘러 깨어나 보니 각종 들짐승들이 물가에 와서 물을 마시고 다시 숲속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내려가 집안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움부리물 아래쪽에 활집(나무를 엮어 임시 거주할 수 있도록 만든 집)을 짓고 사냥을 하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잡은 짐승들을 팔아서 모은 돈으로 마소를 사서 방목하며 키우고 우거진 밀림지대를 개간해 농사를 지으며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800평 가까이 되던 움부리못 주변에는 30년 전까지만 해도 수령이 500년 넘는 팽나무들이 울창했었습니다. 우리 마을이 월림리라고 부르게 된 것은 1956년 한림면이 읍으로 승격할 때 한경면을 분리하면서 우리 마을을 남북으로 이어주는 신작로를 중심으로 동쪽은 상명리 하동, 서쪽은 저지리 북동을 통합하여 한림읍 월림리(月林里)가 된 것입니다."

예술인마을 '갤러리(nori)' 마당에 형태가 보존된 봉곶물 모습.

마을 이름에 숲이 들어간 것은 8만 평에 달하는 '봉곶물곶'이라고 하는 곶자왈이 마을이미지에 큰 영향을 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봉곶물곶'이라고 하는 곶자왈이 소들을 방목해 키우는 곳이었다는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너른 초원이 아니라 곶자왈 속에 소들을 집어넣으면 암반지대로 이루어진 지질 특성 때문에 물이 고인 곳이 많아 소들이 물을 마시고 풀을 뜯을 수 있어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를 한 번 잃어버리면 찾는 데에만 보름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자연과 사람, 짐승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던 것. 월림리가 보유했던 특이한 목축문화였다고 해야겠다. 지금도 월림리 곶자왈 속에는 소들이 목을 축이던 봉곶물들이 여러 곳에 숨어 있다. 하나의 자연사 자원이 분명하거늘. 예술인마을 인근에서 월림리 주거지역 인근까지 방대한 지역에 대한 활용가치를 이런 목축문화를 배경으로 관광자원화 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는 것이다.

김춘보 이장

김춘보(51) 이장으로부터 월림리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제주어마을'사업을 중심으로 당면과제와 숙원사업을 들었다. "제주인들이 쓰는 언어가 소멸위기라고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제주어의 보전과 사용을 위해 각계에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마을공동체 단위에서 이를 기록하고, 정리해 특화된 자원으로 상용 발전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마을 총회에서 주민 스스로가 월림리를 '제주어 마을'로 지정하고 자체적으로 제주어문화학교를 개설해 여러차례 대학교수들을 초청해 강의도 들으면서 점진적으로 나갈 방향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제주 정신문화의 근간을 지킨다는 사명감이 주민들에게 폭넓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향후 관광산업과의 연계과정에서 제주의 정체성을 특화된 모습으로 등장시키고자 합니다." 제주의 문화적 자산을 경제적 부가가치로 파악해 마을공동체 차원에서 치고나가는 모습이 활달하다. 이런 노력에서 성공을 거두는 선례를 만드는 것이 실질적인 제주어 보전 방안이라고 학계와 행정 당국에서도 인정하고 있다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때까지 지속적인 지원정책이 뒤따라야 하겠다. 제주다운 것을 물질이나 풍경이 아니라 정신문화 속에서 찾으려면 월림리의 이 노력에서 성과를 얻도록 해줘야 희망이 있다. 고영준(53) 개발위원장은 마을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을 이렇게 밝혔다. "외지에 나가 살고 있는 주민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살 수 있는 산업적 여건을 마련해야 합니다.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고 해서 이대로 좌절 할 수는 없는 사안이기에 마을공동체사업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관광산업과 연계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하겠습니다." 젊은이 세대 농가가 10여 가구 정도 밖에 되지 않은 현실에서 마을 발전을 위해 고향사람들이 돌아와 줘야 한다는 절박함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30년 넘게 육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와 농사를 지은 지 4년이 되어간다는 조상식(54) 마을회 감사는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마음이 편합니다. 어린 시절 함께 성장한 외부에 사는 친구들에게 돌아와 같이 살아가자고 자신있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농촌은 삶의 모습 그대로 힐링공간입니다. 이러한 마인드를 관광산업과 접목시킨다면 농외소득을 중심으로 돌아오는 농촌1번지가 될 것입니다."

분지지역이라 수차례 수해를 입었던 소로물내에 대한 하천정비가 이뤄졌다.

양재완(47) 마을회 총무의 이야기에서 월림리의 강점과 장점을 발견한다. "마을 어르신들이 관광성수기에 물거리못 정자에 앉아 관광버스들이 월림사거리로 얼마나 지나가는지 숫자를 세었다고 합니다. 오전에만 250대가 지나가자 한 탄식이 '관광차가 저렇게 많이 지나가는데 우리마을에서 멈추게 할 방법이 부족하네!'라고 했습니다." 좋은 여건은 이미 파악됐으니 준비하고 실천하면 성공하게 될 마을이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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