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영국 시인 예이츠(William Butler)의 시 '이니스프리 호수섬'(The LakenIsle of Innisfree)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이제 일어나 가련다, 이니스프리로,/ 나뭇가지와 진흙으로 거기 조그만 오두막집을 짓고, /아홉 이랑의 콩밭을 일구며, 꿀벌집도 마련하리라,/ 그리하여 꿀벌소리 요란스런 그 숲 속에서 홀로 살아가리라.(하략)'
문학도로서의 꿈을 키우던 학창 시절 봄이 되면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양지바른 곳에 기대어 앉아 이 시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눈이 부시도록 황홀한 유채꽃밭을 보노라면 꿀벌소리가 잉잉거리고, 그야말로 몽환적(夢幻的) 풍경이었다. 예이츠가 꿈꾸던 곳도 바로 이런 땅이 아닌가 여기기도 했다.
그 당시 제주인들은, (다른 지역도 큰 차이는 없었겠지만) 매우 가난했었다. 늘 먹고 싶었던 '곤밥'(쌀밥)은 제사· 명절 때나 맛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제사가 끝나면 차롱에 여러 그릇의 밥을 담고 홀로 사는 노인네 집을 찾아 나눠드리도록 했다. 살림은 어려웠지만 늘 어려운 이웃을 살피며 더불어 살려고 했던 어른들의 가르침이 마음 한구석에 지금도 자리 잡고 있다.
수십년 전에 비하면 모든 게 풍족한 시대다. 그러나 섬 곳곳에서 정감어린 원풍경들이 급속하게 무너지는 현상을 보며 분노와 절망감도 존재한다. 겨울이면 홀로 빈 들판을 지키며 눈을 맞던 소나무가 있던 언덕은 이제 골프장이 들어섰다. 1970년대만 해도 제주시 도심에 남아 있던 유채밭과 돌담은 사라진지 오래다. 저녁 9시 막차가 떠나면 도시는 고요 속에 묻혔다. 그러면 파도가 밀어 올렸다 끌어내리는 탑동의 먹돌 소리만 밤새도록 울려 퍼졌다. 이처럼 자연이 들려주던 도심의 음악도 개발시대에 사라졌다.
내년 제주에서 열리는 세계자연보전총회는 의제를 '복원력(復原力)'으로 설정했다고 한다. 사실 개발이라는 이름의 불도저는 물질적 풍요로움과 생활의 편의를 안겨주는 대신 지구촌의 미래에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제주 역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많은 것들을 앗아갔다. 이대로 간다면 유네스코가 트리플 크라운을 안겨준 제주의 풍광도 머지않아 빛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런 위기의 조짐은 이미 우리 곁에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제주섬, 나아가 지구촌의 위기는 하늘(天)과 땅(地), 그리고 사람(人)의 소통과 조화로움을 잊어버린 데서 비롯되고 있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지구환경의 위기가 인간들이 자연을 함부로 다룬 오만함과 탐욕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그래서 2012 WCC총회의 의제를 '생태의 복원력'으로 설정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지구촌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지구촌 가족들이 함께 극복하자는 일종의 지구 살리기 선언서와 다를 바 없다.
탐라인들은 1500년 전 천·지·인의 합일과 조화를 담은 칠성대를 쌓아 후세에 물려주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그것들은 사라졌고, 그 정신은 단절되었다. 필자는 제주가 WCC총회에 참가한 그들의 테이블 위에 천지인의 조화가 깃든 칠성대를 담아 내놓았으면 한다. 그것은 제주의 가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인류가 오래전부터 간직해 왔던 지혜, 즉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해 왔던 인간성을 다시 회복하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그래야 생태가 복원되고 지구촌이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갈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언젠가는 제주가 숱한 예이츠의 후예들이 동경하는 섬, 아름다운 환경수도로 거듭났으면 한다. 강문규 칼럼은 이 글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