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규 칼럼]씨 뿌릴 때와 거둘 때

[강문규 칼럼]씨 뿌릴 때와 거둘 때
  • 입력 : 2011. 12.13(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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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의 계절이다. 늦가을이 지나면 나무들은 잎을 떨어뜨리고 앙상한 몸으로 겨울을 맞는다. 모든 생장을 멈추고 고행의 모드로 들어간다. 긴 겨울 찬바람을 이겨낸 나목들은 봄을 기다려 다시 싱그러운 생명의 잎들을 돋아낸다. 그게 자연이 보여 주는 아름다운 생명의 윤회다. 그런 나목들을 보며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가는 스님들을 떠올리게 된다. 참으로 경건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정치권에도 삭풍이 몰아치며 정치인들을 떨게 하고 있다. 일과성 바람이 아니다. 정치지형을 한꺼번에 뒤바꿔 놓을 지진이 격랑처럼 몰아닥치고 있다. 진앙지(震央地)는 서울시장 선거였다. 선거에 패배한 한나라당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것은 서울시장 선거 패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총선과 대선의 풍향을 알리는 신호로 읽었기 때문이다. 차기 정권 재창출을 의심치 않던 견고한 지지가 안철수라는 일개 서생(아직은 정치초년병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한)의 등장으로 하루아침에 불투명하게 되었으니 대경실색할 일이다. 야당인 민주당은 집권당인 한나라당과는 경우가 다르다 하지만 서울시장 선거 때처럼 안철수 교수와 짝짓기 하지 않고는 정권을 잉태할 수 없는 불임(不姙)정당이라는 냉엄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집권세력인 청와대와 한나라당에 대한 강진예보는 진작부터 있었다. 고·소·영 내각이라고 지칭되는 그들만의 인사잔치 때부터 감도 높은 정치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몰락과 한나라당의 비운을 예감했을지 모른다. 그 후 부자들을 위한 감세정책, 지방은 외면하고 수도권만을 위한 편중정책을 펼 때도 그랬을 것이다. 대북포용정책이 꽁꽁 얼어붙고 민주와 인권이 하찮게 유린 될 때, 보수언론의 편파보도가 나치의 괴벨스처럼 국민들의 시야와 사고를 옭죌 때 많은 이들은 지지의 손길을 거두었을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의 모습은 마치 난파선을 연상시킨다. 배는 침몰하는데 선장도 없고, 일부 선원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다른 배로 갈아타려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 전 대표에게 올인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시련은 한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선관위와 박원순 후보의 홈페이지를 먹통으로 만든 '디도스공격'은 폭발력을 가진 정치뇌관이다. 경찰은 수사 결과 한나라당 의원 비서인 공씨 개인의 돌출행동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 사건의 주변에는 여러 명의 한나라당 비서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그래서 경찰의 발표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수사는 이제 검찰 손으로 넘어갔다. 대통령 친인척들의 비리도 고구마처럼 계속 튀어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난파선과 같은 당을 하루속히 복구해 재출범하려고 비상체제로 돌입하고 있다. 민주당도 야권통합을 통해 집권탈환하려고 나름대로 리모델링 된 스마트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부의 작태가 나타나고 있다.

자연의 이치로 본다면 씨를 뿌릴 때가 있고 거둘 때가 따로 있다. 이명박 정권이 어떤 씨를 뿌렸고, 한나라당은 어떤 농사를 지었는지 공과(功過)를 평가할 때도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민주당을 비롯한 다른 야당들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평가가 불행하게도(?) 자신들이 아니라 주인인 국민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청와대를 비롯한 한나라당과 야당은 지금쯤 번민의 밤을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그 번민이 한국정치의 거듭남을 위한 진정한 고행의 시간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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