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ED 지상전] (11)이승수의 '곶-물들다'

[갤러리ED 지상전] (11)이승수의 '곶-물들다'
이 땅과 교감하는 봄날의 넝쿨 숨결
  • 입력 : 2021. 01.26(화) 00:00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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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한라산이 자리했고 눈앞엔 바다가 펼쳐지는 제주시 화북포구 인근 작업실. 그가 돌창고로 부르는 그곳엔 봄이 되면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넝쿨이 밀려들었다. 넝쿨은 문득 그에게 "이 땅에 숨 쉬고 있는 존재는 나 혼자만이 아니었구나"라는 걸 깨닫게 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초록 식물의 줄기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관념이 아닌 실재로 만들어줬다.

이승수 작가가 2014년 제주도립 제주현대미술관 지역네트워크 교류전에서 첫선을 보인 '곶-물들다'는 화북 작업실에서 시작돼 태곳적 사연을 간직한 제주 곶자왈까지 이야기를 뻗어간다. 동으로 빚어낸 같은 제목의 작품이 제주 중견 작가 11인 초대전을 통해 갤러리 이디에 걸렸다.

'곶-물들다'는 해녀, 물고기를 소재로 선재적 요소가 강한 작품을 발표해온 이승수 작가의 변화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당시 민성래 성신여대 교수는 이 작가의 개인전에 썼던 평문에서 "그가 사용한 선(線)은 단순한 선이 아닌 스스로 숨쉬며 생명을 열어 나가는 '숨결'로 보고 있다"면서 "숨결이 공간을 열어 확산시키고, 교감시키는 과정을 보게 된다"고 했다. 이때가 원재료의 물성에 성격을 부여하는 작업을 넘어 그것이 품은 시간성, 공간성에 눈길을 돌리도록 이끈 시기가 아니었을까.

이 작가에게 동은 '익숙한 언어'다. 차가운 성질의 동은 시간이 흐르며 색감이 변하는 등 자연적인 느낌을 준다. 이 작가가 자연 환경의 변화를 읽고 그 표정을 담아내는 데 동은 맞춤한 재료가 되었다.

'곶-물들다'엔 선과 면이 있다. 둥그런 형상의 작품 아래에 놓인 면은 오름이면서 대지다. 그 오름 위로 넝쿨이 하늘거린다. 딱딱한 금속인 동은 어느 순간 제주 바람이 되어 깃발처럼 나부낀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 하나둘 옛 모습을 잃어가는 제주섬을 지탱하고 있는 건 그들의 나직한 숨결이다. 땅과 함께 호흡하는 넝쿨과 같이 우리도 눈과 귀를 열어 나무와 풀이 건네는 위안에 응답해야 한다.

제주대 교수인 이 작가는 제주대 미술학과, 성신여자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했다. 2001 제주도미술대전 대상, 2004 한국구상조각대전 대상, 2011 초계청년미술상, 2016 하정웅 청년미술상 수상자로 지금까지 10여 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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